[박열](2017) by cryingkid


이준익 감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전작인 <동주>도 그랬지만, 이 영화 역시 일제시기 무정부주의 운동사를 알지 않고서는 절대 찍을 수 없는 감각과 연출로 가득하다. 가령 지금은 넌더리나도록 닳고 닳은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이, 이 시기에는 개인이 개인으로 바로서기 위한 보조재로도 사용될 수 있었음을 그려논 장면들이 많다. 이런 감각은 그 시대를 다룬 연구서를 읽지 않고는 얻어지기 어려운 통찰이다. 또한 일본 사람이 다 나쁜 게 아니라는 뻔한 소리는, 이 영화의 묘사 정도는 돼야 합당한 무게감을 얻는다. 세상이 생각하는 선악의 구도보다 운동이 몸소 겪는 현실이 언제나 더 구체적인 법이다.

일본근현대사 전공자 임성모 선생 수업 때 <가네코 후미코>(2003)를 읽은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이 때 박열 관련한 답사를 갔는데, 그 전에 선생이 거기 가서는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가 훌륭한 사람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삼가라고 당부했다. 그 정도로 둘의 인생을 비교해보면 가네코 후미코가 한층 더 훌륭하고 입체적인 삶을 살았고, 영화에서 그 점을 아주 잘 살려놨다. 영화가 박열보다 후미코를 더 멋지게 그린 것은 실제로 그녀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일찍 사망한 것이 요행으로 작용한 점도 없지는 않다. 그보다 오래 산 박열은, 오랜 감금과 회유의 영향에선지 1935년 옥중에서 전향하여 천황제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해방 후 출옥하여서도 그는 이념적으로 갈지자를 그린다. 재일한국인 우익단체인 민단의 초대 장을 역임하는 등, 아나키스트라는 경력에 무색하게 해방정국기를 우익으로 살았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이후 북한 관변단체에 들어가 재일 교포의 북송 선전에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운동가들이 해방 이후까지 위신을 지키고 살았던 사례는 슬프지만 드물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 깔리는 <이태리의 정원>은 다름아닌 월북 무용가 최승희가 부른 것인데, 최승희 역시 일제 말기에 친일을 했고, 북으로 간 후에 1967년 숙청되어 2년 뒤 사망했다. 왠지 영화가 이야기하지 않은 박열의 해방 후 삶을 이 노래 하나가 대변해주는 듯하다.

제국 일본의 법정과, 소위 말 안듣는 조선인의 대비가 이 영화의 중핵이다. 천황제와 문명국을 한번에 거머쥐려는 욕심많은 자들이, 어떻게 미시적인 권력으로 자신의 컴플렉스를 배불렸는지 상세히 소개된다. 더불어 당시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불렸던 조선인의 "불령"함(무례하고 뻔뻔스러움)이 유감없이 그려진다. 이 대비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래로 조선 사람은 말 안듣기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그것이 한국과 일본의 정치지형을 갈랐다. 일본 자민당의 일당 집권이 3년 3개월을 제외하고 이어지는 반면, 그보다 후진 정치라 조롱당하던 한국의 야당 정권교체 기간이 10년을 넘어가고 있는 것은, 그렇게 말 안듣는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정치 변화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 말을 듣는 것보다 말을 안 듣는 것이 언제나 조금은 더 창발적이고 개인의 본위에 가까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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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7일 아키타형무소를 찾은 <야마가타신문> 기자에게 박열은 "전향 이후 일본인으로 살아간다고 맹세한 이상,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아도 나는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 현재의 심경은 나 자신의 생명과 인격을 단순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무사히 오늘에 이른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는 폐하의 위광에 의한 것이라 믿고 있다"고 술회했다. 이것이 박열의 본심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과거와 같은 저항정신을 상실한 것만은 확실하다." (367)

"후미코가 자기를 철저하게 투시함으로써 비전향 즉 반천황제를 꿰뚫고자 했던 데 비해, 자기 사상의 기저에 민족을 두고 있었던 박열은 그녀만큼 자아를 깊이 있게 탐색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은 내셔널리즘으로부터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억압받는 식민지 민족의 구성원에게는 개인의 해방보다 민족해방이 우선하는 과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민족과 개체로서의 자아의 관계를 심도 있게 묻지 않은 것이 박열이 얼마 안 있어 옥중에서 조선민족으로부터 이반하여 천황제에 굴복하고 전향한 내적 원인이 아니었을까." (142-143)

- 야마다 소지, 정선태 역, 『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산처럼, 2003.

[꿈의 제인](2016) by cryingkid



"방법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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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륜의 지긋지긋함과 피떡 위에 올라앉은 인륜에 대한 환상. 현실일 법한 광경과 비현실일 법한 광경이 서로 바꾸어 마주앉았다. 사람 사이의 일이 이렇게 속해져도 좋은 것이기 이전에, 사람 사이란 이미 그렇게 주어진 것이어서, 태연히 움직이는 사실처럼 입 다문 채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아픈 기억들이 마구 되살아난다.

고통스런 현실을 전달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있다. 꿈과 환상을 사용한 영화들은 대개 고통스런 현실에 대비되는 찬란한 꿈들을 앞세우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꿈들은 이미 현실인 양 똑같이 불행하다. 마치 상식 밖의 일들을 거듭 마주하고 나면 그 비상식이 이내 일상이 되고 마는, 그렇게 한번 갈아엎혀 골라진 밭두렁같은 현실이 이 영화에선 꿈이다. 음악도 그렇고 작법도 그렇고 데이빗 린치를 차용한 부분이 많은데, 이 지독히 현실같은 꿈의 세계를 그리는 대목에서 감독의 진짜 복심이 빛난다.

성소수자를 인물이 아니라 극의 장치로 사용한 것이 맞는데, 이 정도의 대상화는 외려 훌륭한 편이 아닌가 싶다. 종태원이나 퀴어퍼레이드가 묘하게 현실감이 없을 때가 있지 않은가. 한없이 닫히고 좁은 행복이 그날따라 너무 즐거울 때. 혹은 잔뜩 모여든 소수자들을 보는 가운데 숫제 즐겁지가 않을 때. 너무나 복잡하고 감당못할 인간 사이의 눈치를 어느 샌가 그냥 가로지르게 될 때. 그 모든 분위기와 관계망 한가운데 트랜스젠더 제인이 서 있다. 그런 정서를 쉽게 보편적일 수 있다고 말하거나, 매우 특이한 사례로 연민하며 소외시키지 않고 그것을 다루는 어려운 과업을, 영화는 썩 잘해낸 편이다.

이 영화의 슬픔은 너무 끔찍하게 깊어서 부디 직면하고 싶지 않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엔 끝내 행복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눈앞에 오물거리는 입에 맞춰 그에 어울리는 말을 선사하고픈, 이른바 사회성에 충실한 태도를 조금도 취할 의사가 없는 마음들이 인간에겐 누구나 있다. 그 슬픈 구석을 영화는 끄집어낸다. 처음에는 그리 할 수 없었다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인간이 세상과 관계에 적응하는 일이 그러하다.

신화화된 성소수자 캐릭터가 꿈결같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하는 말은, 그 역사들을 짐작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극적인 여운을 준다. 난 네가 마음을 닫아버린 폐문의 과거를 알고 있다고. 나 역시 그러했다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세상에 왔다는 것만큼이나 너무나 곡진한 거짓말이어서 거듭 속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 알고 해량하고 나서 던지는 지독히 속된 눈가림, 이 영화가 제공하는 구원은 그래서 찝찝하고, 또 찝찝한 만큼 아름답고 구슬픈 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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