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사랑](2017) by cryingkid


"씨발 내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죠?"

한국 뿐만 아니라 내 눈으로 본 전세계 모든 퀴어영화 중에 최고다. 물론 관객은 많이 안들 것이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에게도 이성애자에게도 제대로 불편할 영화이니까.

먼저 동성애란 뭘까. 이 영화에 나오는 양익준과 정가람은 동성애자일까. 영화에서 둘 사이의 그 흔한 키스·애무·섹스신은 단 한 컷도 안나온다. 심지어 둘이 극 속에서 실제로 육욕을 느꼈는지에 대한 단서조차 없다. 그럼 이들의 관계는 뭔가. 여기서 이들의 관계가 과연 '동성애냐'란 질문은 과연 정당한가. 내지는 어떤 관계가 동성애다-라고 명토박힐 때, 인간의 삶과 사랑 중 어떤 부분이 삭제되고 마는가.

동성애란 말이 정체성으로 자리잡을 때, 그것은 자연히 이성애와는 다른 계보를 가진 어떤 것으로 상상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실제 동성애자나 성소수자에게 잘 들어맞는 것이다. 우리는 모처럼 이성애와 다른 새로운 삶과 사랑을 상상했으면 한다. 그것은 바르고 순정하다. 그러나 이 규정은 그 사람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자임하기까지의 과정 중 일부를 은폐한다. 은폐되는 것은 바로 동성애에 얽힌 이성애적 기원이다.

모든 동성애는 이성애에 대한 기생이자 오마쥬다. 말이 이상한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모든 동성애자는 자신이 성을 알아갈 때 이성애를 전경으로든 우회적으로든 경험한다. 일반 포르노에서 여성과 섹스하고 있는 남성의 몸매와 성기를 보고 반하든지, 이성애의 어느 한쪽 캐릭터를 롤모델로 삼아 자신의 색다른 성애를 상상하든지, 이성애의 어떤 관계를 보고 그것을 자신의 로맨틱한 관계의 이상으로 삼거나,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열렬히 도망가는 식으로 인생을 꾸리든지, 그 어떤 경로로든 동성애자는 이성애를 좋든 싫든 경험한다.

그리고 제도가 으레 그러하듯, 그것은 놀랍도록 자연화된다. 원래는 자연스런 게 아닌 것이 자연화될 때 그리 되듯, 이 영화에 나오는 이성애는 놀랍도록 너절하다. 더불어 제도가 그러하듯이, 이성애자들은 그런 너절함이 딱히 좋아서 거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헌데 그 이성애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의 일부일 수 있음이 밝혀지는 순간, 이성애자들은 예정된 공포에 휩싸인다. 이성애 제도가 누군가에 의해 자연이 아닌 선택으로 희롱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성애자에게 거지반 모욕에 가까운데, 왜냐하면 이성애자들도 사실은 그것이 선택 가능한, 가늘고 얇은 제도'일 뿐이었다'는 걸 사는 동안 예감하기 때문이다. 가족도 생식도 모·부성애도, 사실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화된 제도였을 뿐인 그 안에서 개인이 어디까지 짐작할 수 있고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으며 어디부터 절망하게 되는지, 영화 속 전혜진은 온몸을 다해 연기한다.

그럼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비-이성애, 퀴어일지도 모르는 어떤 성애와 삶의 형태는 해방일 수 있는가? 그들로부터 도망가서 게이들끼리 희희낙낙 살면 모든 게 끝인가?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전형을 취하지 않는다. 그럼 그로부터 훨훨 벗어나 성애의 구체적인 면면을 이잡듯이 핥고 그 살들의 부딪침에 뭔 대단한 게 있는 듯이 두 명의 아름다운 남성의 나체를 보여주면 끝인가? 다행히 영화는 그런 편한 전략을 취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남성간의 성을 성애화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부분이 이 영화를 다른 어떤 퀴어영화보다 '퀴어'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여느 퀴어영화에서 뻔질나게 다뤄지는 남성간 성애야말로, 그 퀴어(?)적 성애가 실은 이성애로부터 열렬히 도망나온 것이라는 기원을 삭제하는 장치로 즐겨 사용되기 때문이다.

퀴어와 이성애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영화 속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에 등장하는 이성애 수행은 적나라하고, 그 곳엔 언제나 그 속의 자신과 상황을 어색해하는 퀴어들이 있다. 헌데 그와 동시에 퀴어들은, 자신에게 어색하고 때론 고통을 주는 그 이성애가 사실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이성애 제도의 허약함이야말로, 퀴어들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던 근원이다. 마치 매끈해보이는 결혼과 양육과 가족-내-복지의 이성애 제도가 얼마나 신화일 수 있는지 퀴어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헌데 그 신화의 균열이 곧 퀴어 스스로의 탄생신화이기도 하다. 퀴어가 온전한 스스로의 삶과 성애의 양식을 계발하고픈 당찬 욕구에도 불구하고, 퀴어는 이성애의 예정된 실패 가운데 태어났고, 따라서 이성애-기생적이며, 이성애에 의해 역설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 가운데 한 개인의 감정이 얼마나 유약하고 비참한지, 영화 속 양익준은 온몸을 다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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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부터 이성애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퀴어영화-란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과연 퀴어는 이성애에 그렇게도 위협적이지 않을 수 있는, 임상적으로 깨끗한 존재인가. 이 영화가 내놓는 대답은 전혀 다르다. 퀴어야말로 이성애의 실패가 낳은 피조물이자, 그런 주제에 이성애를 선택의 위상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전복적인 존재다. 퀴어가 이성애자에게 불러올 합당한 감정은 '불쾌하고 재수없음' 정도일 것이다. 이 영화는 딱 그만큼 불쾌하고 재수없다. 더불어 이 영화는 퀴어에게도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퀴어에게 자신의 이성애적 기원은 누구보다 앞장서 짓밟고 구겨버리고 싶은, '정체화' 이전의 미숙한 기억으로 미봉될 '불쾌하고 재수없는' 경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불쾌와 재수를 누구나 또 언제나 경험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불편한 만큼, 이 영화가 '퀴어'할 수 있는 이유다.

전혜진은 거의 여자 송강호 급의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의 본질이 퀴어라기보다 퀴어에 비친 이성애의 존재,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역으로 더 잘 드러나는 퀴어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전혜진이다. 각본의 캐릭터와 대사와 연기력 모두 혀를 내두를 만큼 출중하다. 양익준은... 너무 식이 됐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를 못하겠다. 감독의 이름이 생소한데, 장편 데뷔작으로 이런 걸 찍었다니 앞으로의 필모가 너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형도의 싯귀가 참 좋았다. 이성애에 부역했던 퀴어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손색이 없는, 약하고 귀기어린 글귀들이었다.

[박열](2017) by cryingkid


이준익 감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전작인 <동주>도 그랬지만, 이 영화 역시 일제시기 무정부주의 운동사를 알지 않고서는 절대 찍을 수 없는 감각과 연출로 가득하다. 가령 지금은 넌더리나도록 닳고 닳은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이, 이 시기에는 개인이 개인으로 바로서기 위한 보조재로도 사용될 수 있었음을 그려논 장면들이 많다. 이런 감각은 그 시대를 다룬 연구서를 읽지 않고는 얻어지기 어려운 통찰이다. 또한 일본 사람이 다 나쁜 게 아니라는 뻔한 소리는, 이 영화의 묘사 정도는 돼야 합당한 무게감을 얻는다. 세상이 생각하는 선악의 구도보다 운동이 몸소 겪는 현실이 언제나 더 구체적인 법이다.

일본근현대사 전공자 임성모 선생 수업 때 <가네코 후미코>(2003)를 읽은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이 때 박열 관련한 답사를 갔는데, 그 전에 선생이 거기 가서는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가 훌륭한 사람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삼가라고 당부했다. 그 정도로 둘의 인생을 비교해보면 가네코 후미코가 한층 더 훌륭하고 입체적인 삶을 살았고, 영화에서 그 점을 아주 잘 살려놨다. 영화가 박열보다 후미코를 더 멋지게 그린 것은 실제로 그녀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일찍 사망한 것이 요행으로 작용한 점도 없지는 않다. 그보다 오래 산 박열은, 오랜 감금과 회유의 영향에선지 1935년 옥중에서 전향하여 천황제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해방 후 출옥하여서도 그는 이념적으로 갈지자를 그린다. 재일한국인 우익단체인 민단의 초대 장을 역임하는 등, 아나키스트라는 경력에 무색하게 해방정국기를 우익으로 살았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이후 북한 관변단체에 들어가 재일 교포의 북송 선전에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운동가들이 해방 이후까지 위신을 지키고 살았던 사례는 슬프지만 드물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 깔리는 <이태리의 정원>은 다름아닌 월북 무용가 최승희가 부른 것인데, 최승희 역시 일제 말기에 친일을 했고, 북으로 간 후에 1967년 숙청되어 2년 뒤 사망했다. 왠지 영화가 이야기하지 않은 박열의 해방 후 삶을 이 노래 하나가 대변해주는 듯하다.

제국 일본의 법정과, 소위 말 안듣는 조선인의 대비가 이 영화의 중핵이다. 천황제와 문명국을 한번에 거머쥐려는 욕심많은 자들이, 어떻게 미시적인 권력으로 자신의 컴플렉스를 배불렸는지 상세히 소개된다. 더불어 당시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불렸던 조선인의 "불령"함(무례하고 뻔뻔스러움)이 유감없이 그려진다. 이 대비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래로 조선 사람은 말 안듣기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그것이 한국과 일본의 정치지형을 갈랐다. 일본 자민당의 일당 집권이 3년 3개월을 제외하고 이어지는 반면, 그보다 후진 정치라 조롱당하던 한국의 야당 정권교체 기간이 10년을 넘어가고 있는 것은, 그렇게 말 안듣는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정치 변화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 말을 듣는 것보다 말을 안 듣는 것이 언제나 조금은 더 창발적이고 개인의 본위에 가까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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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7일 아키타형무소를 찾은 <야마가타신문> 기자에게 박열은 "전향 이후 일본인으로 살아간다고 맹세한 이상,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아도 나는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 현재의 심경은 나 자신의 생명과 인격을 단순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무사히 오늘에 이른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는 폐하의 위광에 의한 것이라 믿고 있다"고 술회했다. 이것이 박열의 본심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과거와 같은 저항정신을 상실한 것만은 확실하다." (367)

"후미코가 자기를 철저하게 투시함으로써 비전향 즉 반천황제를 꿰뚫고자 했던 데 비해, 자기 사상의 기저에 민족을 두고 있었던 박열은 그녀만큼 자아를 깊이 있게 탐색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은 내셔널리즘으로부터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억압받는 식민지 민족의 구성원에게는 개인의 해방보다 민족해방이 우선하는 과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민족과 개체로서의 자아의 관계를 심도 있게 묻지 않은 것이 박열이 얼마 안 있어 옥중에서 조선민족으로부터 이반하여 천황제에 굴복하고 전향한 내적 원인이 아니었을까." (142-143)

- 야마다 소지, 정선태 역, 『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산처럼,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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