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2월 03일
나카노 도시오,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
다른 이를 대할 때, 내가 알던 내 모습을 고수하려 머리부터 굴리지 마라. 상대에 집중해라. 어차피 상대에게 나는, 내가 생각해오던 내 모습만 노출되는 게 아니니까. 나는 내 모든 것들을 미리 생각해둘 수 없고, 남들에게 엿보일 내 모습은 언제나 내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는다. 나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나의 모습에 겸허해져야 한다.
주체가 분열되었다는 건, 그럼으로써 이전에 알던 나와는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유지해오던 평온한 나를 더는 유지할 수 없음을 뜻한다. 자기가 몸소 분열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처럼 뼈저린 과정이다. 그를 통해 내가 생각하기 전에 처해있던 '나'를 보는 것이다. 이는 곧 '나'를 내 생각에 갇힌 존재에서 이미 관계에 노출되어 있던, 내가 알아가야 할 존재로 바꿔두는 것이고, 이는 또한 내가 이전보다 넓은 지평에서 한층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나에게 매여있을 어떤 관계의 얼굴을 보려고 하기도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을 신주단지처럼 붙들려 하지 마라. 그로부터 모든 기만이 시작된다. 그리되면 먼 훗날에, 나는 내 생각과는 턱없이 다른 내 형편과 그로부터 어긋났을, 방향이 잘못되었던 내 노력에 절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떠하다'는 정체성의 논지는 그래서 늘 미괄식이어야 하고, 더불어 늘 열려있어야 한다. 물론, '열려있는 나'를 미리 상정해놓고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를 두괄식으로 놓는 것이다. 나는 언제 닥칠지 모를 '낯섦'의 존재 앞에, 그리고 그로 인해 변해버릴 내 모습 앞에 겸허해야 한다. 거기서 내가 원래 '열려있으려던 사람'이라 채근해봤자 그 자리에 있던 '나'에게 자연스레 밀려왔을 배움의 과정만 이리저리 왜곡될 뿐이다.
'나'를 털어낸다는 건 그런 거다. 알고 있던 나를 털어냄으로써,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 속에 처해 있던 나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를 내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이끌려면 이끌수록, 나는 더더욱 많은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_
저자는 전후 일본이 자신들의 죄과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것을 꼽았다.
참고로 이 책은 학술서이고, 티 테이블용 연애 도서가 아니다.
(물론 윗글은 내가 쓴 것이고, 책에는 윗글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제목에서 언급한, 저자가 비판하는 두 학자는
수많은 후학과 팬을 거느리고 있는 저명한 사상가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존경하는 학자로 나는
주저없이 마루야마 마사오를 꼽고는 했다.
일독을 권한다.
주체가 분열되었다는 건, 그럼으로써 이전에 알던 나와는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유지해오던 평온한 나를 더는 유지할 수 없음을 뜻한다. 자기가 몸소 분열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처럼 뼈저린 과정이다. 그를 통해 내가 생각하기 전에 처해있던 '나'를 보는 것이다. 이는 곧 '나'를 내 생각에 갇힌 존재에서 이미 관계에 노출되어 있던, 내가 알아가야 할 존재로 바꿔두는 것이고, 이는 또한 내가 이전보다 넓은 지평에서 한층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나에게 매여있을 어떤 관계의 얼굴을 보려고 하기도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을 신주단지처럼 붙들려 하지 마라. 그로부터 모든 기만이 시작된다. 그리되면 먼 훗날에, 나는 내 생각과는 턱없이 다른 내 형편과 그로부터 어긋났을, 방향이 잘못되었던 내 노력에 절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떠하다'는 정체성의 논지는 그래서 늘 미괄식이어야 하고, 더불어 늘 열려있어야 한다. 물론, '열려있는 나'를 미리 상정해놓고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를 두괄식으로 놓는 것이다. 나는 언제 닥칠지 모를 '낯섦'의 존재 앞에, 그리고 그로 인해 변해버릴 내 모습 앞에 겸허해야 한다. 거기서 내가 원래 '열려있으려던 사람'이라 채근해봤자 그 자리에 있던 '나'에게 자연스레 밀려왔을 배움의 과정만 이리저리 왜곡될 뿐이다.
'나'를 털어낸다는 건 그런 거다. 알고 있던 나를 털어냄으로써,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 속에 처해 있던 나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를 내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이끌려면 이끌수록, 나는 더더욱 많은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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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전후 일본이 자신들의 죄과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것을 꼽았다.
참고로 이 책은 학술서이고, 티 테이블용 연애 도서가 아니다.
(물론 윗글은 내가 쓴 것이고, 책에는 윗글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제목에서 언급한, 저자가 비판하는 두 학자는
수많은 후학과 팬을 거느리고 있는 저명한 사상가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존경하는 학자로 나는
주저없이 마루야마 마사오를 꼽고는 했다.
일독을 권한다.
# by | 2010/02/03 21:49 | 책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