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의 일기 by cryingkid

모순 이후의, 양면성 이후의 윤리, 내 것이 아닌 상태 이후의 방책,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알아채고, 우회하지 않는 것, 구체의 디테일을 구체적인 순간에 포착해내기, 칼같이 정확한 실천, 생산성을 잃지 않는 것. 요새의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로부터 글과 학술과 인생의 화두의 일치를 다시 꿈꾸어봐야겠다. 내 영역, 내 고민의 밀도를 지키는 일을 다시 손대야 하겠다. 가령, <일대종사> 감상평에서 내가 썼던, "무얼 원하고 원하지 않았는지 구별할 수 없을 때에, 비로소 그들은 자신의 세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은 비겁한 문장이다. 그 이해의 요체가 무엇인지 대답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과 바라지 않음이 공존하는 형태는 문학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얼마든 가능하나, 그 이후의 '이해'가 정녕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저 언명 속에 비어있다.

어떤 뜻이 무너진 이후의 세계를 온전히 폐허란 말로 수습할 수 없다. 거기엔 설명을 기다리는 다른 뜻이 도사리고 있고, 그 얼룩덜룩함을 효과적으로 공글릴 만한 언어를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우리를 잊고, 세월이 세월을 잊고, 또 그 잊음이 마땅했던 자리에 비로소 꽃핀 서정"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자신을 되살리고 기억하는 상태도 서정일 수 있지만, 자신을 잊은 피동과 능동의 상태 또한 서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주체의 힘줌을 통해 빽빽히 꾸려진 어떤 축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울 뿐이다. 빽빽히 묘사하기 어렵다 해서 묘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라리 왜 듬성듬성한가, 를 통해 얻어질 어떤 사유의 단초들이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빽빽한 것이 어딘가 우세스러운 세상 안에 대충 솎인 듯 서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보다 힘있게 껴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주마간산의 실존이, 단지 개인적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떤 동시대성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격한 근대화, 빠른 체제교체, 뒤집히는 문화 속에서 휘날려가는 개인의 취향과 계층과 밥줄이 과연 빽빽함을 용인했을까. 사랑도 슬픔도 세월도 내 것이 아니었던 사람들의 군상은 차라리 보편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세월과 감정이 내 것이 아닌 채 살아야 하는 이들, 연명의 일상이 무엇을 잊고 무엇으로부터 겨우 놓여난 것이었는지" 체감해야 했던 이들은 차라리 대다수가 아니었을까. 그러면 그 고민에 주박되었던 나는 용케 혼자가 아닌 게 되고, 그 고민을 공유했을 시절도 결국은 혼자가 아닌 게 된다. 개인의 고민에 동시대성과 역사성을 '분별있게' 부여하는 작업이야말로 자아와 학술의 연장에 값하는 일이다.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 어려움을 넘어,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 왠지 죄스럽다는 느낌. 끊임없는 정신없음으로 사람과 취향 사이를 부유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할지 모른다는 느낌. "반쯤" 잊어버리고 "반쯤" 진심인 채로, 어느 것에도 깊이 삼투되지 않고 반만 발담근 채로, 그 "반쪽"들의 정치와 순위와 분별의 악무한으로 세월을 낙관하는 것이야말로 차라리 독단을 피할 방법인 것만 같은 느낌.
모든 느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만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묘사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이유를 넘어서는 관점이 있어야 한다. 교조와 폭력은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 운용의 대상인 것처럼 맥빠진 다원주의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집중이 죄스러울 수 있음을 알고서 부리는 집중, 교조와 다원관 양 극단의 무저갱을 알고 그 가운뎃거리에 처하는 지혜, 죽을 것을 알고 오늘을 사는 삶이 바로 그런 결단을 닮았다. 어떤 어지러움이 끝내 비정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세심하게 말하는 것은 애정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어두움이 끝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루만지며 사는 삶은 강단이 필요한 일이다. 죽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싸워 이겨야 한다. 없애는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르다. 이 시대의 정신없음 또한 이겨야 할 적수이지 말살해야 할 제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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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이기는 것일까? 어째서 세심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런 신경줄 거친 과정을 통해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을 껴안아야만 하는 것일까? 어째서 복잡한 것만이 우월한 것일까?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자르는 진리의 직면만이 이 시대의 처방인 것은 아닐까? 조금만 복잡하게 사랑하자는 구호가 얼마나 대중적일 수 있을 것이며, 애초에 왜 인간은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가? 어째서 먼저 사랑하는 것이 이기는 것인가?

솔직히 알 수 없다. 확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이 맞는 길이라는 예감과 확신이 있다. 먼저 꼼꼼히 사랑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렇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생래적 허무보다 그 편이 훨씬 아랫목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밥을 짓고 국을 안치듯, 처음부터 맛있게 만들 아무런 이유가 없는 음식의 간을 공글리듯,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마음 놓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있는지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아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를 무위로 돌리는 방법 외에 그 아픔을 껴안는 방법은 상대방에게서 내 존재를 온전히 용인받는 것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게 이기는 걸까? 자신이 여기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남이 거기에 존재해야할 이유를 모두 엮어 한 언어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가 이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 태어남"의 조건이다. 글이든 관계든 영혼이든 세계이든, 존재가 어루만져진 사랑의 힘에서 창조의 권능이 나온다. 만져지지 못한 존재가 진물을 흘리면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거북등이 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가 자기를 버티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 그렇게 된다. 만져지지 않으면, 존재는 그렇게 된다. 남은 커녕 제가 여기에 있어도 될 이유조차 잃어버린 존재는 아무 힘을 낼 수 없다.

이기지 못하고 지는 때가 많다. 추스르지 못하고 사는 삶조차 버거울 때가 많다. 대답이 뻔해서 대답이 되레 무의미해보인다. 그렇게 애초에 모든 뜻으로부터 미끄러진 삶인 것 같다가도, 어쩌다 꿈결처럼, 혹은 현실처럼 자신의 존재가 쓰다듬기는 그 느낌마저 내팽겨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느낌이 설령 우연한 것이라 해도, 그 우연 속에 깃든 온기마저 잘라낼 까닭은 없지 않은가. 존재하는 데 아무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랑에도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연거푸 지고 난 후의 이김은 그렇게 이유없이 나를 찾을 것이고 그것을 어둠의 연쇄를 빌미로 물리치는 일이야말로 제 삶의 연속을 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패배 앞에 무력하듯이, 사랑 앞에서도 무력하다. 패배 앞에 무력할 방법을 알면서, 사랑 앞에 무력할 방법을 몰라야 할 까닭이 없다.

무력한 몸으로 오는 사랑을 고스란히 입고 또 무력한 몸으로 그 사랑을 얼마간 나누어준다. 감정과 사태의 인과는 그 무력함 가운데의 한 발 한 발에서 나온다. 그것이 애초에 그럴싸하고 선험적인 인과와 달리 비끄러매지는 까닭은 그것이 허덕이는 실천을 통해 비로소 쟁취되기 때문이다. 그럴싸하고 선험적인 사랑의 인과와, 무력함 가운데 한번 짐지어보는 사랑의 인과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대체로 아름답고 미리 씌어진 옳음에 빗대 외롭고, 아무도 모르는 각자의 인과를 때로 가쁜 호흡으로 밟아나갈 뿐인 것이 존재의 해답을 모르는 자의 도리다.

어루만져지는 정한 느낌을 기억하며 또다른 누군가를 만져주는 것, 사랑의 이유를 캐물었는가? 무력한 몸이 너무도 푸른 꿈을 꾸고 있다. 무엇이 이기는 것인가? 무력한 몸이 무력한 몸에 어색하지 않은 마음을 지니는 것, 섣불리 지은 모든 예상 가능함 속에 수초처럼 내려닿는 어루만짐의 감각을 쳐내지 않는 것. 제 존재를 조금이라도 덜 아파하는 것. 그리하여 무언가를 새로 지을 힘을 내는 것. 그로부터 자신이 새로 지어질 기회를 갖는 것. 그럼으로써 나를 보는 남들에게 진짜 희망을 주는 것. 그렇게 나를 통해 남을 어루만지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그렇게 꼼꼼히, 먼저 사랑하는 것. 그것이다. - 2013.10.29.

[1987](2017) : 장테일 by cryingkid

* <1987>(2017) 두번째 관람. (스포일러 만땅)

첫 관람 때 못 봤던 부분이 보인다. 실화 이외의 영화적 터치를 어떻게 가미했는가를 중점으로 보았는데, 그 디테일이 꽤나 촘촘하고 두터워서 덕질하기에 딱 좋다.

먼저 박처원(김윤석 분)의 인물 묘사가 새로 들어온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박처원의 대사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앞에는, 남영동의 휘하 요원을 잡아다 고문한 경찰 측 간부의 "감히 각하의 명령을 어기고"라는 대사가 놓인다. 박처원이 실제로 조직 보위에 예민했다는 점에 비추어 자기 조직을 건든 데 대한 분노로 읽을 수도 있지만, 더 파고들어볼 구석도 있다.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건 사학과 강의의 첫 시간에서 배우는 것인데, 이 대사는 좌파 뿐만 아니라 대공수사처의 우파에게도 그런 인식이 있다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대공 업무에 몸담고 있던 사람 중 적지 않은 수는 정부 측 인사를 '정치꾼'이라 여기고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현 정부의 정치를 뛰어넘는 어떤 국가의 상상을 놓고 자신의 애국심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은 안 바뀐다"는 대사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볼 만하다. 말하자면 그들의 국가관은 정부의 국가관에 제약되지 않는 어떤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셈.

그 다음으로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밀어붙이는 최환 검사를 놓고 박처원이 치는 "가새끼 빨갱이네? /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도 흥미롭다. 막상 인과관계로 촘촘히 이어지는 듯한 6월 항쟁의 도화선은, 다시 생각해보면 실낱같이 가늘다. 각각의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 그것들이 연결되었다기 보다, 어떨 때는 의료인의 양심으로, 어떨 때는 공무원의 직무규정으로, 어떨 때는 평소에 잘만 접대를 받던 한 검사의 변덕스런 재량으로 그 모든 일들이 낭창낭창 이어진다. 이걸 역으로 읽으면, 그 모든 링크 중에 하나가 깨져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수사대상이 된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는 뜻. 박종철 열사의 경우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고, 영화는 그에 대한 묘사를 꽤 할애하는 편이다. 백일하에 드러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외에, 드러나지 못한 숱한 죽음과 침묵의 습기를 염두에 두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 영화의 유일한 가공인물인 연희(김태리 분)도 눈에 새로 들어온다. 많은 리뷰를 통해 다뤄졌듯이 그녀가 맡은 역할은 민주화운동의 유효성에 대해 마지막까지 회의하는 인물이고, 그것이 당시 보통 사람들의 감수성이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헌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희는 이한열(강동원 분)과 한병용(유해진 분)과의 대화를 통해, 그 시절 민중들이 운동의 공과 한계에 대해 모르고 있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운동가들 또한 민중에게 친숙한 일상의 행복과 가족의 소중함 등을 몰라서 그런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노조와 관련된 연희의 부친에 대한 묘사는 많은 것들을 곱씹게 한다. 만약 이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훨씬 더 정훈영화스러웠을 거고, 영화 속 운동가 또한 훨씬 평면적인 인물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 캐릭터가 입체적인 부면을 갖는 데에 김태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인식이 (어머니 품속같은 이땅 어쩌구의)386의 여성화된 민중상에 일조한다고 볼 수도 있고, 이는 얼마간 사실이기도 하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언급되는 등 영화가 젠더 감수성을 아예 신경쓰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불충분하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80년대 총여 건설부터 90년대 말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를 잇는 역사가 영화로 나와줬으면 좋겠다. 워마드가 이런 컨셉의 영화 추진한다고 하면 심지어 지지할 의사도 있음.)

영화적으로 다시 봐도 뛰어났다고 생각되는 시퀀스는 박처원과 한병용의 대질 신문, 명동성당에서 고문치사 수사관의 이름을 첫 공개하는 5.18시국미사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장면을 잇는 부분, 그리고 그 시점에 향'림'교회에 들이닥친 박처원을 그리는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땡전뉴스 나오기 전 좌우로 패닝되는 초침 소리는 다시 보니 되게 인상적이다. 시간이 시간을 만났을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지 작품 스스로 궁금해하며 만들어진 영화다운 도입부란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그날이 오면> 다음에 나오는 마지막 엔딩 크레딧 삽입곡이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인 것도 흥미롭다. 영화가 운동과 일상 둘 모두에 발딛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달까.

(이 영화의 문법을 비교적 세밀하게 분석한 리뷰로는 다음을 참조.)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9090&utm_source=d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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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나무위키에 올라오지 않은 트리비아

1) 영화 속 "대한예수교장로회 향림교회"는, 실제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문익환 목사 외 진보적 목사들 다수가 기장 출신임을 감안할 때, 감독이 보수교단인 예장을 우회적으로 디스한 연출이라 볼 수도 있겠다. 기장 측 입장에선 기분이 묘할 것 같다고 생각됐던 부분.

2) 박종철 열사의 사망 원인은 욕조 턱에 목이 눌려서 발생한 질식사인데, 이는 달리 보면 고문기술의 부족으로 생긴 일이다. 보통은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붓거나, 칠성판에 몸을 묶고 물을 들이붓는 식으로 고문했다. 영화 속에도 한병용을 고문할 때 유사한 장면이 등장하기는 한다. 물론 그런 식의 고문방식이 덜 잔인하다는 건 절대 아니고. <남영동1985>(2012)에 자세히 나오긴 하지만, 그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고 김근태씨는 평생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3) 영화 속 구치소 보안계장 안유(최광일 분)의 허벅지를 대공수사처 요원이 구두 뒤축으로 눌러 고통을 주는 장면은, 실제로 허벅지 안쪽이나 바깥쪽의 뼈를 밟으면 외상을 안 남기고 고통을 줄 수 있어 당시 안기부 요원들이 즐겨 사용했던 제압법이었다.

4) 왜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열사들 중에 박종철이고 이한열이었을까는 사회와 학계가 풀어나갈 숙제일 텐데, 김정남(설경구가 연기한 그 김정남 맞다)이 이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있어 옮겨와본다.
"그러나 나는 박종철의 부친이 한 몇마디의 말이 엄청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는 박종철의 빈소에 찾아온 조문객들에게 독백처럼 "내 아들이 못돼서 죽었소. 똑똑하면 다 못된 것 아니오"라고 말했다.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실로 심장(深長)한 것이었다. 만마디의 웅변보다도 더 절절하게 당시의 사회상을 표현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였다."
- 김정남, 「아아, 박종철」, 『진실, 광장에 서다 :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창비, 2005, 565-566쪽.

5) 퀴어영화에서 보았던 배우들이 이곳저곳 등장한다. 김태리는 말할 것도 없고, <꿈의 제인>(2016)의 박경혜, (영화 말고)음악극 <두결한장>(2014)에 등장했던 강정우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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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이야기

1) 일단 6월항쟁 이후 운동적으로는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운동의 화력이 이어지지 못했고, 또 정치적으로 직선제 이후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죽 써서 개준 꼴"이 된 것, 그리고 그 노태우와 야당 인사 김영삼이 1990년 3당합당을 저질러 2017년 현재까지 국회에 5공 시절 민정당계 의원들이 남아있게 된 일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2) 6월 항쟁 이후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청문회가 방송에 탔고, 5공 청산 열기가 고조되는가 했지만, 전두환의 백담사 은둔 등을 기점으로 청문회는 기만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본래 계획되었던 6공화국의 중간평가는 유보되었으며, 임수경·문익환·황석영의 방북은 제도권 야당과 운동진영의 분열을 불러왔고, 이에 맞서 공안당국은 급속도로 세를 결집시켰다. 더불어 6공화국 초기 정부비판 언론인에 대한 보안사령부의 백색테러 사건이 여전히 지속되었다.

3) 1990년 3당합당 이후 1991년 4월 26일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강경대 열사가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4-5월 사이 총 8명의 학생·노동자가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를 두고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악명높은 칼럼을 써 이를 맹비난했고, 이 때를 기점으로 위의 열사들은 그 이전의 열사와 같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죽음이 왜 같은 죽음으로 기억되지 않는가 하는 과제가 뒤따르는 이유이고, 90년대 운동권 세대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 사건.

4)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이후에도 수사기관의 고문 관행은 계속되었다. 2002년에는 검찰의 고문으로 피의자가 사망한 일이 세상에 공개되었고, 경찰은 2000년대 말, 국정원은 2010년대 초까지도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했다는 기사가 검색된다.

5) "종운이 어딨어" 라는 영화 속 조한경 반장(박희순 분)의 대사에서도 나오듯이,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위치를 불 것을 강요받았던 사람은 박종운이다. 그는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부천시 오정구 국회의원 선거에 3번 출마해 3번 낙선했다. 당시 한나라당에는 6공 시절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했던 정형근이 의원직에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행보에 대해, 그는 "박종철 열사의 정신을 가슴에 묻고 정치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6)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당시 담당 수사검사 중 한명은 박상옥이었다. 당초 두 명의 경관만을 고문치사의 진범으로 구속 기소한 것이 그이고,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 후에는 다시 박처원을 비롯한 관계자 6명을 구속 기소하였다. 사건을 축소한 사람과 확대한 사람이 동일한 검사인 셈.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긴, 1995년 12.12/5.18특별법 제정 당시 검찰의 거부, 그리고 여론이 악화된 이후 검찰의 번복·재수사 결정을 연상케 한다. 당시 익명의 검사는 한겨레를 통해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는 말을 남겼다.
박상옥은 2015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되었고, 위 고문치사 사건 경력으로 인해 야권은 표결을 보이콧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였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단독 처리로 임명 강행되어 현재까지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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