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Queen by cryingkid



르퀸이 문을 닫는다. 한 공간이 사라지는 데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한 공간이 존재해온 데엔 그보다 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공간이란 한번 생기고 난 이후엔 거기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해지고 그게 없어질 거라곤 좀체 생각을 못한다. 그만치 공간은 거기에 드나든 이들에게 남몰래 깊이 스며든다. 나 또한 살면서 많은 공간에 정들었고, 정붙였던 많은 공간을 잃었으며, 내일이면 내 안에 꽤 깊이 배어든 또 한 공간을 잃게 된다.

르퀸은 이상한 곳이었다. 연예인으로 활동한 MTF 트랜스젠더 사장님이 성소수자들에게 매주 작은 공연을 열었다. 손님들 중 상당수를 차지한 게이들은 이 공연을 보면서 세상에 '여자'란 게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공연자 중엔 이성애자도 있었다.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밤에 열리는 클럽 무대에서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았다. 손님이 많건 적건 쇼는 계속됐다. 외성기 절제 수술을 스스로 개그 요소로 만드는 MTF의 무대에 배를 잡고 웃으며, 다부진 몸의 게이가 끼스런 몸짓을 희화화하는 무대에 매번 감탄하며, 딱 떨어지게 남자다운 게이가 앞섶을 희롱당하고 절륜한 드랙을 입은 이성애자 남성의 무대가 잠시 그들의 성정체성을 착각하게 만들 때, 나는 어느새 내 속에 품은 성性에 얽힌 온갖 가드를 조금씩 내리게 되었던 것 같다.

남자답고 싶은 규범과 여성스러워 보이면 안된다는 눈치와, 함부로 넘나들어도 안되고 함부로 머물러서도 안되며, 감히 까발려서도 안되고 티나게 숨겨서도 안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얽힌 온갖 종류의 겁먹음들이, 이 곳에서는 조금 풀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대에서 매주 시연되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광경들이 남몰래 그런 힘을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 공간은 사람들 마음 속의 수줍은 은둔과 은둔이 서로 쑵쑵하게 마주보던 자리였다.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저기 무대의 사람들을 보라고, 저 사람들도 각자 지닌 은둔의 낯빛이 있다고, 그걸 품고도, 그걸 다 알고도 저렇게 온 힘으로 춤추는 거라고. 그러니 우리도 함께 춤추자고. 어차피 가슴 속 수줍은 한은 지금 당장 해결될 것은 아니라고. 그것들을 안은 채로, 지금 여기서 즐길 수 있는 행복을 거머쥐자고.

성性의 미로에 지치고 외로울 때, 세상 어느 누구도 모두 제각기 다르다는 그 추상같은 개별성에 말문이 막힐 때, 이곳에 들르면 그 굳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MTF 트랜스젠더 공연자가 '뽈록이'라고 놀릴 때 환한 얼굴로 그것을 재밌어하는 일반 여성과 레즈비언들을 보면서, MTF를 언감생심 '형'이라 불렀다는 어느 속시끄러운 사연에 제 일처럼 짜증내던 게이들을 보면서, 그 게이들이 4시가 지나고 이제는 좀 드러내도 좋은 수컷내 나는 상체를 벗어올리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그런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이 없어지면, 그 때의 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안도와 속깊은 몽롱함이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 같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조금 울었다. 아끼던 공간을 더는 잃고 싶지 않았다. 없어진 공간과 함께 영원히 텅 비어버릴 기억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잃은 다른 많은 공간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 또한 내일이 되면 오랫동안 마음 한 켠에 욱신거리는 구멍으로 남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스러지는 세상에서 정붙이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겠냐만, 사람은 때로 그 어리석음의 힘으로 제 수명을 셈한다. 내 33살과 34살의 해엔 르퀸이 만들어놓은 거짓말같은 추억들과 그것이 끊어져 둥글게 아문 자리의 둔통이 끝내 남을 것이다. 이토록 텅빈 내 한철을 그리워할 수 있게 해준 르퀸의 모든 공연자와 스탭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 2016.12.18.

(Le Queen : 2012.7~2016.12)

모두가 맨얼굴이다 : 영화 <위켄즈>(2016) by cryingkid



* 스포일러 있음

모두가 맨얼굴이다. 한두명을 제외하고, 지미집 카메라로 담은 무대 위 지보이스 단원들의 얼굴엔 블러도 모자이크도 없다. 서른 명이 넘는 게이들의 얼굴이 이렇게 한꺼번에, 아무 위장이 안된 채로 스크린에 담긴 적은 처음이다. 저 각각의 얼굴들은 곧, 그 한 사람이 촬영동의서를 쓸 때의 고민과 두려움과 결단의 무게에 값한다. 이들은 어째서 그럴 수 있었을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는, 관객층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 매해 지보이스 정기공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영화엔 나레이터가 없다. 인터뷰, 공연실황, 창작곡 뮤비, 고양이(!), 일상의 스케치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행간의 의미가 나레이터의 구실을 한다. 서두부터 머리에 꽃을 꽂고 '착한' 게이인 척하더니(『종로의 기적』), 곧바로 이태원 게이클럽을 비추며 단원들의 섹스 얘기로 넘어가고, 그러더니 별안간 그네들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잔잔히 이야기한다(『피스맨』). 또 처음에는 여느 게이 영화에서 지겹도록 다룬, 깨가 쏟아지는 게이 로맨스 얘기를 잠깐 하다가, 그 관계가 어떻게 깨지고, 깨진 감정들이 또 단체 안에서 어떻게 극복되는지를 다룬다(『UP』).

단원들 각자가 처한 노동현장도 보여준다. 지나가는 영상에서 어느 단원의 어깨에 붙은 공익 마크가 잠깐 나온다. 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겪는 고달픔을 노래하며(『쉽지 않아』), 게이로 산다는 것이 꼭 연애에만 긴박될 수 없음을, 그 연애가 포함된 삶의 총체가 있음을 영화는 요령있게 전달한다. 공연실황과 뮤비가 교차편집된, 이름도 어마무시한 『길녀의 추억』에서는, 여느 사람들에게 딱 지목되기 쉬운 여성스런 게이의 전형이 가감없이 그려진다. 그렇게 소위 '끼스런' 이미지들이 잔뜩 나열된 후에는, 단원들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겪는 소외와 고충을 말하는 장면이 바로 맞붙는다. 영화는 커밍아웃이 가지는 본래 의미와 무게를 에둘러가지 않는다. 더불어 이 모든 것을 겪은 단원들이 그 삶의 총체 안에서 어떻게 서로 끈끈해지는지를 영화는 담담히 담는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동성결혼식 장면에서 영화는 감정의 능선을 한 고비 넘는다. 결혼식 축가 무대에서 지보이스는 어느 보수 기독교도의 똥물 세례를 맞는다. 무대를 끝까지 마치고 오물이 묻은 몸을 서로 닦아주는 장면 후에, 우리에게 혐오를 뿌린 이 세상의 죄를 우리가 용서한다는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의 총연습 현장이 그려진다. 어째서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 육박해오는 얼얼한 감정을 뒤로 하고, 영화는 거침없이 정기공연에 분주한 대기실의 풍경을 비춘다. 그 여상스런 일상의 모습이 그때쯤이면 여상스럽지 않게 와닿는다. 이들의 무대가, 이들의 노래가, 이들의 존재가 여기에 있음-의 의미, 그리고 그들이 짓는 웃음의 의미가 모두 다시 읽히기 시작한다. 온갖 구린 것들을 다 당하고 난,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똥물을 맞고 성추행을 당하고 난 사람들의 육체, 그 몸을 회돌아나오는 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메운다. 단원들 중 한 명의 죽음을 기린 『북아현동 가는 길』에서, 이 노래를 얼마나 진심을 다해 부르고 있는지 선연히 드러내는, 무대 위의 단원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차례차례 빛난다.

후반부로 접어들며 영화는 팽목항과 쌍차 고공농성장으로 향한다. 다소 급작스레 연결되는 시위현장과 그곳에서의 지보이스 공연은, 단원들과 그곳 현장 모두에게 의외의 감동을 선사한다. "운동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한 노동자의 말처럼, 말못할 일들을 겪고 그 일을 노래로 푸는 과정에서 속으로 남몰래 벗겨지던 것, 그 회심의 변화를 그들 중 누군가는 알아본 셈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감동적이었"다는 언급은, 그렇게 안으로 저며온 눈물과 눈물, 가슴에 패인 자국과 자국이 의외로 서로 가까울 수도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쌍차 노래패 "함께꾸는꿈"이 지보이스의 곡 『Congratulations』를
 함께 부르며, 팔을 들었다 겨드랑이를 가리는 퍼포먼스를 함께 하는 무대를 비출 때, 영화는 그토록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뻔뻔스럽도록 끼스런 연출이 금속노조원 남성노동자의 손끝에서 다시금 그 의미가 새로워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영화 속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영화 초반부, 철호·재우 커플의 집에서 세월호 뉴스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졸린 눈을 한 두 게이가 이불을 개키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한다. 어쩌면 성소수자를 비롯한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너무나 참혹한 진실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의 연속이었는지 모른다. 그 수많은 것들을 겪고 그것을 떠나보낸 자리에 남는 서정, 거기에서 왜 이들이 시위판에서, 굳이 얼굴을 드러내고 노래하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의 일부가 풀린다. 우리가 애써 스쳐보내는 지금 이 곳의 공기가 문득 새삼스러워질 때, 개인과 사회, 일상과 운동 사이의 그 절벽같던 간격은 놀랍도록 가까워진다.

매일 아침 뉴스로 흘려보내야했던 세월호 뉴스처럼, 퀴어문화축제에서, 서울시청농성에서 울려퍼지는 성소수자 혐오를 그저 흘려보내야했던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혐오세력을 향해 "거울을 보"라고(『Shut Up』) 댓거리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을 참아온 그들의 내면은 비로소 제 얼굴로 빛난다. 그리고 "고작해야 10년이 지났"다는(『코러스보이』) 지보이스의 노래처럼, 우리의 내면은 아직도 차마 말못한 부분이 많고, 그들의 노래가 계속되는 만큼 우리의 내면 또한 맨얼굴로 나누고픈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진실로 "우린 더 행복해져야" 하고,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Congratulations』)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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