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2017) : 장테일 by cryingkid

* <1987>(2017) 두번째 관람. (스포일러 만땅)

첫 관람 때 못 봤던 부분이 보인다. 실화 이외의 영화적 터치를 어떻게 가미했는가를 중점으로 보았는데, 그 디테일이 꽤나 촘촘하고 두터워서 덕질하기에 딱 좋다.

먼저 박처원(김윤석 분)의 인물 묘사가 새로 들어온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박처원의 대사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앞에는, 남영동의 휘하 요원을 잡아다 고문한 경찰 측 간부의 "감히 각하의 명령을 어기고"라는 대사가 놓인다. 박처원이 실제로 조직 보위에 예민했다는 점에 비추어 자기 조직을 건든 데 대한 분노로 읽을 수도 있지만, 더 파고들어볼 구석도 있다.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건 사학과 강의의 첫 시간에서 배우는 것인데, 이 대사는 좌파 뿐만 아니라 대공수사처의 우파에게도 그런 인식이 있다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대공 업무에 몸담고 있던 사람 중 적지 않은 수는 정부 측 인사를 '정치꾼'이라 여기고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현 정부의 정치를 뛰어넘는 어떤 국가의 상상을 놓고 자신의 애국심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은 안 바뀐다"는 대사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볼 만하다. 말하자면 그들의 국가관은 정부의 국가관에 제약되지 않는 어떤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셈.

그 다음으로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밀어붙이는 최환 검사를 놓고 박처원이 치는 "가새끼 빨갱이네? /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도 흥미롭다. 막상 인과관계로 촘촘히 이어지는 듯한 6월 항쟁의 도화선은, 다시 생각해보면 실낱같이 가늘다. 각각의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 그것들이 연결되었다기 보다, 어떨 때는 의료인의 양심으로, 어떨 때는 공무원의 직무규정으로, 어떨 때는 평소에 잘만 접대를 받던 한 검사의 변덕스런 재량으로 그 모든 일들이 낭창낭창 이어진다. 이걸 역으로 읽으면, 그 모든 링크 중에 하나가 깨져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수사대상이 된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는 뜻. 박종철 열사의 경우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고, 영화는 그에 대한 묘사를 꽤 할애하는 편이다. 백일하에 드러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외에, 드러나지 못한 숱한 죽음과 침묵의 습기를 염두에 두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 영화의 유일한 가공인물인 연희(김태리 분)도 눈에 새로 들어온다. 많은 리뷰를 통해 다뤄졌듯이 그녀가 맡은 역할은 민주화운동의 유효성에 대해 마지막까지 회의하는 인물이고, 그것이 당시 보통 사람들의 감수성이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헌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희는 이한열(강동원 분)과 한병용(유해진 분)과의 대화를 통해, 그 시절 민중들이 운동의 공과 한계에 대해 모르고 있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운동가들 또한 민중에게 친숙한 일상의 행복과 가족의 소중함 등을 몰라서 그런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노조와 관련된 연희의 부친에 대한 묘사는 많은 것들을 곱씹게 한다. 만약 이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훨씬 더 정훈영화스러웠을 거고, 영화 속 운동가 또한 훨씬 평면적인 인물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 캐릭터가 입체적인 부면을 갖는 데에 김태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인식이 (어머니 품속같은 이땅 어쩌구의)386의 여성화된 민중상에 일조한다고 볼 수도 있고, 이는 얼마간 사실이기도 하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언급되는 등 영화가 젠더 감수성을 아예 신경쓰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불충분하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80년대 총여 건설부터 90년대 말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를 잇는 역사가 영화로 나와줬으면 좋겠다. 워마드가 이런 컨셉의 영화 추진한다고 하면 심지어 지지할 의사도 있음.)

영화적으로 다시 봐도 뛰어났다고 생각되는 시퀀스는 박처원과 한병용의 대질 신문, 명동성당에서 고문치사 수사관의 이름을 첫 공개하는 5.18시국미사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장면을 잇는 부분, 그리고 그 시점에 향'림'교회에 들이닥친 박처원을 그리는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땡전뉴스 나오기 전 좌우로 패닝되는 초침 소리는 다시 보니 되게 인상적이다. 시간이 시간을 만났을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지 작품 스스로 궁금해하며 만들어진 영화다운 도입부란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그날이 오면> 다음에 나오는 마지막 엔딩 크레딧 삽입곡이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인 것도 흥미롭다. 영화가 운동과 일상 둘 모두에 발딛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달까.

(이 영화의 문법을 비교적 세밀하게 분석한 리뷰로는 다음을 참조.)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9090&utm_source=d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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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나무위키에 올라오지 않은 트리비아

1) 영화 속 "대한예수교장로회 향림교회"는, 실제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문익환 목사 외 진보적 목사들 다수가 기장 출신임을 감안할 때, 감독이 보수교단인 예장을 우회적으로 디스한 연출이라 볼 수도 있겠다. 기장 측 입장에선 기분이 묘할 것 같다고 생각됐던 부분.

2) 박종철 열사의 사망 원인은 욕조 턱에 목이 눌려서 발생한 질식사인데, 이는 달리 보면 고문기술의 부족으로 생긴 일이다. 보통은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붓거나, 칠성판에 몸을 묶고 물을 들이붓는 식으로 고문했다. 영화 속에도 한병용을 고문할 때 유사한 장면이 등장하기는 한다. 물론 그런 식의 고문방식이 덜 잔인하다는 건 절대 아니고. <남영동1985>(2012)에 자세히 나오긴 하지만, 그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고 김근태씨는 평생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3) 영화 속 구치소 보안계장 안유(최광일 분)의 허벅지를 대공수사처 요원이 구두 뒤축으로 눌러 고통을 주는 장면은, 실제로 허벅지 안쪽이나 바깥쪽의 뼈를 밟으면 외상을 안 남기고 고통을 줄 수 있어 당시 안기부 요원들이 즐겨 사용했던 제압법이었다.

4) 왜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열사들 중에 박종철이고 이한열이었을까는 사회와 학계가 풀어나갈 숙제일 텐데, 김정남(설경구가 연기한 그 김정남 맞다)이 이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있어 옮겨와본다.
"그러나 나는 박종철의 부친이 한 몇마디의 말이 엄청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는 박종철의 빈소에 찾아온 조문객들에게 독백처럼 "내 아들이 못돼서 죽었소. 똑똑하면 다 못된 것 아니오"라고 말했다.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실로 심장(深長)한 것이었다. 만마디의 웅변보다도 더 절절하게 당시의 사회상을 표현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였다."
- 김정남, 「아아, 박종철」, 『진실, 광장에 서다 :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창비, 2005, 565-566쪽.

5) 퀴어영화에서 보았던 배우들이 이곳저곳 등장한다. 김태리는 말할 것도 없고, <꿈의 제인>(2016)의 박경혜, (영화 말고)음악극 <두결한장>(2014)에 등장했던 강정우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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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이야기

1) 일단 6월항쟁 이후 운동적으로는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운동의 화력이 이어지지 못했고, 또 정치적으로 직선제 이후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죽 써서 개준 꼴"이 된 것, 그리고 그 노태우와 야당 인사 김영삼이 1990년 3당합당을 저질러 2017년 현재까지 국회에 5공 시절 민정당계 의원들이 남아있게 된 일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2) 6월 항쟁 이후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청문회가 방송에 탔고, 5공 청산 열기가 고조되는가 했지만, 전두환의 백담사 은둔 등을 기점으로 청문회는 기만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본래 계획되었던 6공화국의 중간평가는 유보되었으며, 임수경·문익환·황석영의 방북은 제도권 야당과 운동진영의 분열을 불러왔고, 이에 맞서 공안당국은 급속도로 세를 결집시켰다. 더불어 6공화국 초기 정부비판 언론인에 대한 보안사령부의 백색테러 사건이 여전히 지속되었다.

3) 1990년 3당합당 이후 1991년 4월 26일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강경대 열사가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4-5월 사이 총 8명의 학생·노동자가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를 두고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악명높은 칼럼을 써 이를 맹비난했고, 이 때를 기점으로 위의 열사들은 그 이전의 열사와 같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죽음이 왜 같은 죽음으로 기억되지 않는가 하는 과제가 뒤따르는 이유이고, 90년대 운동권 세대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 사건.

4)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이후에도 수사기관의 고문 관행은 계속되었다. 2002년에는 검찰의 고문으로 피의자가 사망한 일이 세상에 공개되었고, 경찰은 2000년대 말, 국정원은 2010년대 초까지도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했다는 기사가 검색된다.

5) "종운이 어딨어" 라는 영화 속 조한경 반장(박희순 분)의 대사에서도 나오듯이,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위치를 불 것을 강요받았던 사람은 박종운이다. 그는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부천시 오정구 국회의원 선거에 3번 출마해 3번 낙선했다. 당시 한나라당에는 6공 시절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했던 정형근이 의원직에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행보에 대해, 그는 "박종철 열사의 정신을 가슴에 묻고 정치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6)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당시 담당 수사검사 중 한명은 박상옥이었다. 당초 두 명의 경관만을 고문치사의 진범으로 구속 기소한 것이 그이고,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 후에는 다시 박처원을 비롯한 관계자 6명을 구속 기소하였다. 사건을 축소한 사람과 확대한 사람이 동일한 검사인 셈.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긴, 1995년 12.12/5.18특별법 제정 당시 검찰의 거부, 그리고 여론이 악화된 이후 검찰의 번복·재수사 결정을 연상케 한다. 당시 익명의 검사는 한겨레를 통해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는 말을 남겼다.
박상옥은 2015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되었고, 위 고문치사 사건 경력으로 인해 야권은 표결을 보이콧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였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단독 처리로 임명 강행되어 현재까지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다.

[1987](2017) : 민주정권 정훈영화의 슬픔 by cryingkid



* <1987>(2017)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못 만들었단 얘기가 아니다. 영화 자체는 퀄 있게 잘 뽑혔다. 실화를 바탕으로 이렇게 균형을 지켜낸 영화도 몇 없다. 특출나게 잘난 부분도 없지만, 결정적인 흠결도 없다. 라쇼몽식 군상극의 형식도 주효하게 작용했고, 저 많은 등장인물들이 함부로 버려지는 법이 없다. 산만하기 쉽지만 극의 구심력은 끝까지 유지한다.

먼저 이 영화는 민주정권의 정훈영화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6월 항쟁의 한 주역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는 대강 알고 있다. 그런 마당에 역사교육이 아닌 영화의 장에서, 그것도 거대 자본과 초특급 배우를 앞세워 왜 굳이 6월 항쟁을 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당연히 따라붙을 수 있고, 따라붙는 편이 건강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영리하고 빛나는 부분은 김영남(설경구 분)의 존재다. 그는 남영동에서 마지막까지 공작하던, 야당 총수들이 연루된 간첩조작사건의 당사자로 등장한다. 이 캐릭터와 그에 수반되는 간첩조직도의 사진 이외에 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묘사하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딱 이 대목에서 이 영화가 2017년에 개봉했다는 동시대성이 반짝거린다. 영화는 두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과제를 저 인물 하나로 해결했다. (그런 점에서 검찰과 언론을 다루는 터치는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 못 그렸다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거란 얘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덜 영리한 부분은 두 열사를 그리는 대목이다.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를 특별출연시킨 두 열사에 이르러 영화는 사고를 멈춘다. 물론 이는 영화가 이들을 예우하는 방식일 수 있다. 이 열사들에 대한 묘사는 1987년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닌 현현(epiphany)의 방식으로 다뤄진다. 이것이 극의 문법으로 과연 올바른가, 여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 영화의 진의이자 본래의 목적이라는 거겠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여기서 이 영화의 모든 스크립트는 중층적 해석의 장으로 던져진다. 민주당 정권 10년의 "잃어버린" 세월을 지나고도, 6월 항쟁은 왜 이렇게 유수의 배우들이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극으로 새삼 다시 들어올려져야 하는가. 가령 아마도 두 열사를 맡은 배우들 덕에 이 영화는 100만 정도는 더 들 것이다. 그걸 기회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과거와 현재와의 낯선 조우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 저 사건들은 이제와 여기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인가.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의 세월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올 리가 없었을 영화다. 80년대의 저 숱한 지랄들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라고 뇌까리던 자들이 다시금 정관계를 휘어잡는 꼴을 본 게 그 때의 일이다. 장세동 안기부장(문성근 분)의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의 이한열 노제에서의 절규가 2017년 개봉작의 엔딩 크레딧을 뚫는 광경을 보면 묘한 비참함에 휩싸인다. 과거가 과거가 되지 못하는 현재에 대하여, 과거가 이리 갖춰진 모양으로 대접해야 옳았을 만큼 그 지난했던 어제에 대하여 거듭 곱씹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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