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1일
성당, 사제단, 시청광장
중2때였나 중3때였나, 부산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사하구에서 그나마 새로 지은 아파트 덕에 알부자들이 모여 살던 하단 쪽의 성당엘 몇 해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때 도보로 한 시간쯤 걸리는 지구의 신부가 와 새 성전이 필요하다고 울음을 참아가며 강론하던 기억이 난다. 그 땐 그러려니 했고, 그 후로 몇 해간은 성당엘 나가지 않았다. 지금 그 성당은 신자들의 모금으로 몇백만원짜리 예수 성심상을 이마에 이고 있다. 그 성당의 성가 반주는 일품이었지만, 노래 들으러 성당 가는 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고3때 다시 다니기 시작한 성당은 K7마트 위층에 임대형태로 모셔져 있었다. 마치 구멍가게처럼 널려있는 교회마냥 그 자리에 있었다. 성전을 지을 돈을 모으지 못했다고 했다. 신평/하단 쪽에 새로 지은 아파트와 몇 년 안된 학교 덕에 우등생과 졸부와 중딩 조폭들이 부글부글 끓던 곳과도, 다대동 쪽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버스로 10분이 넘도록 아파트가 즐비하던 곳과도 떨어져있는, 장림은 그야말로 그 사이에 놓인 '못사는 동네'였다. 그곳은 마치 중학교때 놀다가 고등학교때 유순해지던 아이들의 다문 입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다문 입처럼, 돈은 씨가 말랐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낯빛이 맑았고, 크게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사람이 빛이고 사람이 전부인 교회였다. 복사를 섰던 아이들은 몇 년 전 비 들이치는 천막에서 고인 물을 밀어내며 미사를 드리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고3시절 생숨이 막힐 때마다 김밥 한줄 시켜놓고 2천원짜리 소주를 까던 김밥집이나, 바닷가 절벽 아래 원두막에서 하늘 가득 낀 구름을 보던 수능 백일주의 기억을 다 그네들과 더불었다. 12시 반에 끝나는 사립고를 나오면서 그네들을 하나하나 떨구고 한시간동안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그래서 행복했다. 인성이 덜 채워진 곳을 돈으로 메운 사람이 없었고, 돈이 있은 자리에 인성이 기묘하게 달라붙은 이들도 없었다. 무엇이 씨가 마르는 곳에 도리어 사람들은 영근다. 거지 같은 학교에서 인생을 앞서 알아야 했던 아이들이 있었고,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나는 어떤 곳에 가든 누구를 보든 그를 판단할 추억 속의 규준 같은 걸 그 때 갖게 됐다.
마침내 성전이 지어지고 고3 내내 미사에 개근했던 사람들도 대학으로 흩어지고, 나는 끝내 이 이상한 서울에 반쯤 적응해버렸지만, 가끔 생각나듯 들르는 그곳에는 주일학교 교사 몇 년에 정말 어른같이 변한 동기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동년배들 중에 그들처럼 '철든' 이들을 본 적이 없다. 할인매장과 아파트와 대운하가 아무리 즐비해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장림시장을 배경으로, 모일 때마다 우리는 싼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십자고상 앞에 함께 경건해졌다. 이따금 경건해지는 그 순간마다 그들에게선 묘한 향기가 났다. 그 향기와 함께 신부님은 항상 우리의 중심에 있었고, 우리 둘레를 부드럽게 공전했다. 술자리에선 형님이라 부르라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아직 돌려드리지 않은 첫 신부님과, 뭔 일이 날 때마다 머리를 밀던, 전역후 고향에 내려온 첫날 기억이 끊긴 몸을 사제관에 허락해 주신 두번째 신부님과, 앞선 신부님의 추억에 손을 꼭 잡아주시던 세번째 신부님이 있으셨다. 우리는 그분들과 함께 울고 웃고 욕하고 술을 마시고, 술잔을 잡은 그 손으로 다시 제단 앞에 엄지를 모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놀고 함께 경건해지던 세 분 모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이셨다.
우연히 사제단에서 시국미사를 집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묵주를 돌리는 엄마와 함께 시청광장에 갔다. 닭장차는 병풍처럼 광장을 둘러있었고, 잔디가 망가진다는 이유로 광장은 반쯤 뒤집혀있었고, 그곳에 앰프 하나를 가져다 놓은 신부님들이 계셨다. 여러 수도회의 수녀님들이 와 계셨고, 미사시작이 늦어진 만큼 사람들은 평일미사처럼 조용히, 꾸준히 운집했다. 몇몇이 성가와 영가와 민가를 불렀고, 노래소리는 구름처럼 관중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취재진들이 몰려있었고, 열악한 앰프 속에 한 신부님이 로사리오를 선창했다. 사제 특유의 평탄하고 울림있는 소리가 공중에 젖어들면, 신자들의 투명하고 안개같은 경소리가 바닥을 메웠다. 소리의 대기가 몇번이고 지나가고, 멀리서 백의를 입은 수십명의 사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가슴이 뛰었다. 사람이 깨끗하게 살랴믄 얼마든 깨끗하게 산다고, 술자리에서 안주따라 발간 얼굴로 웃던 그 때 그 신부님들과, 다문 입으로 그을린 손을 모으고 고상 앞에 부복하던 장림 사람들이 생각났다. 기천년을 이어온 똑같은 기도문에 새로이 고개숙이는 사람들 앞에, 기십명의 제의가 새로이 거룩해지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숭고하려거든 얼마든 숭고하게 산다고, 되바라질 힘도 없는 사람들이 미사포를 쓰고 묵주를 쥔 것을 보았다. 뒤집힌 잔디처럼 사람들은 의연히 후송을 읊었다. 닭장차 두른 광장 속에서 사제들의 비폭력스런 제의는 그래서 꼭 누르고 여민 위안 같았다. 그 위안을 기둥삼아, 뿌리삼아 저들은 끝내 자기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렇게 사제단도 신자들도, 다문 입으로 여민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게 나는 고마웠다. 고마워서, 나는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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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7/01 11:27 | 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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