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과 자기 증명의 비용

문화의 원초적인 규약에 의해 정립된 경험적 질서로부터 미소하게 일탈하여 최초로 그 질서로부터 분리된 문화는 경험적 질서로 하여금 본래의 투명성을 상실케 하며, 자신의 직접적이나 비가시적인 힘을 포기하고, 그 질서가 유일하게 가능한 것, 혹은 최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충분히 자유롭게 한다.

- 미셸 푸코, 『말과 사물』(민음사,1987), 17쪽



일탈하는 순간,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저 명제의 대우는,
자신을 증명하기 귀찮다면, 일탈하지 않아도 된다, 가 되겠군.



사회의 강고한 틀이 아마 저렇게
자기를 증명하기 귀찮은 사람들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거겠지.
그렇다면, 거기까지 양보한다면,
자기를 증명하기 귀찮은 사람들이 최소한
자기를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허용'하기는 해야 할테고.
만약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의 컴플렉스를 노출하는 일이 되니까.
마치 국가보안법의 '금지'가 남한 정권 정통성의 '컴플렉스'가 되는 것처럼.
자기를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히 첫번째로 사게 되는 건 '질투'고,
그건 보통 자기를 증명하고자 하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열등감,
불쾌감에서 오니까, 거기까지 파고들어서 요구하면 되겠다.
그런 걸 가질 필요는 없다, 수준으로. '그들'이 당신의 정체를 위협한다면,
그건 당신이 그만큼 '자기를 증명하기 귀찮다'는 것에 자기 확신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그건 남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확신을 점검해볼 문제라고.

사실, 만약 그것까지 깨치고 사회 시스템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겐
뭐라고 딱히 말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일찌감치 선 그어버린 사람들의 강철같은 확신이, 안온함이
가끔은 부럽기도 해. 난 그런 사람은 차라리 보수 자격 있다고 봐.

by cryingkid | 2009/03/11 15:03 | 짤방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cryingkid.egloos.com/tb/231654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