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2일
동사서독 리덕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쇼크상태가 됐다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속 장국영이
내가 유지하고 있는 어떤 삶의 자세를
너무 보란듯이 뵈주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유 중 둘은, 내가 8년전에 보고 지루하다 여겼던 영화에
머리털 빠지게 감동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사를 옮겨치다가 너무 많아 관둔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는 나의 미래가 불행할 것이란 예감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장국영이 갖고 계시는 위악적인 이해타산도 그 유래가 있는 것이고
유래가 있든 없든 뿌리가 깊든 얕든 그 불행은 가시질 않는다
마음이란 관성이 심해서 가면 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해온 대로 감정을 여닫게 될 것이다, 15일간 괜찮고
15일간 불행하던 젊은 날은, 29일간 멀쩡하고
하루동안을 남몰래 죽도록 앓는, 그래도 수완좋고 낯빛좋은
번들한 중년으로 옮겨갈 것이다
마음이란 조각모음으로 착착 모아지는 데이타처럼,
그 사이에 요지부동으로 내려앉은 스왑파일처럼 분명하다
자기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지 않게 되는 건
자기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에 대한 어떤 부분이 한데로 내몰리는 느낌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멍청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그 멍청해짐을 마음 속 어디에 놓아두느냐에 따라,
어떤 부분에서 '용의주도'하게 멍청해지느냐에 따라
장국영과 장학우의 길이 갈린다
무엇을 더 알아가는 데서가 아니라
알아가는 걸 멈추는 그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된다
그렇게 결정된 각자의 삶을 영화 속 인물들은 뻔하게 걸어간다
지나고 보니 진 거였다는 장만옥의 말이 너무 아팠다
기보단 무서웠다, 장학우처럼 살 자신은 없었지만
장국영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삶의 '일반성'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했다
최근에 나는 내 삶의 보이지 않는 행복까지 모조리
의식적으로 챙기면서 살 수는 없을 거라고 믿게 됐다
그렇기에 다들 그놈의 '일반적'인 패키지 코스로
태연하게 인생들을 밟는 거겠지
거기서 자기가 놓친 자기 행복을
그렇게라도 보상받고 싶어하는 거겠지
거기까지 들어가니까 그야말로 무난하게
결혼을 하고 자식을 기르고 싶어졌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직 나의 어느 부분에서 멍청해져야 할지
선택하지 않았다
그건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을 피할 도리는 없는 셈이다
끝까지 선택을 피한 채 내몰리고 내몰려
끝내 남들이 다 피하는 쭉정이를 선택한 장국영이 떠올랐다
남들에게 우러러지는 궤도로부터 비끄러진 삶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황량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마쵸와 음녀와 극우파와 강단좌파들은
그 쭉정이를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제 멍청함의 궤도를
저리도 굳세이 정해놓은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굳센 멍청함에 빗대 내 인생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없었다, 얼김에 더 예리해지고 싶었을 뿐
내 인생을 어느 섶벌같은 무지에 핑계대야 하는지
까마득할 뿐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장국영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아무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왕가위의 위악적인 색채에 덧씌운 모래바람이
나와 내 미래 사이를 버린 속청처럼 일렁였다
# by | 2009/04/22 16:31 | 일상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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