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2016) by cryingkid



<아가씨> 봄. 
단언컨대 <곡성>보다 쎄다. 박찬욱이 각잡고 만든 변태 영화다. 거의 한국판 살로 소돔의 120일쯤 되겠다. 

감정을 공들여 빌드한 다음에 그 감정을 보란듯이 까부수고, 극진한 아름다움을 만든 다음에 그 아름다움을 보란듯이 짓뭉개며, 그러고 있는 와중에조차 느껴지는 어떤 감정과 아름다움을 설득시키는 것이 박찬욱 영화의 특장이자 호불호 지점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런 점이 극대화된 영화다. 박찬욱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이 극대화된 영화고, 그런 까닭으로 나는 박찬욱 영화 중에 이 영화를 최고작으로 꼽고 싶다.

먼저 '아름다움'. 색감과 화면과 음악이 감독의 어떤 전작보다 아름답다. 박찬욱의 유미주의적 성향이야 만천하가 다 아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저급한 무리들을 아낌없이 스크린에 담는다. <친절한 금자씨> 코멘터리에서 감독이, 금자씨의 "예뻐야 돼, 무조건 예쁜 게 좋아"란 대사가 마치 박찬욱의 영화철학처럼 회자되는 것을 보고, 그 대사를 쓴 것을 후회했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그 말의 반증이 될 법한 것들이 대사와 서사와 묘사로 줄기차게 그려진다. 美라는 게 대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게끔 만든다.

다음 '성'. 스포일러라 다는 설명 못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어떤 종류'의 섹슈얼리티는 전례가 있을까 싶을 지경이다. 사실 1930년대의 조선은 성에 대한 어설픈 백과사전적 과학지식이 축적되었을 시기고, 그 중에 정신병이 어떤 건지 준별되기 시작할 때다. 그 점에 대한 묘사가 나름 센스있다. 더불어 이 영화의 어떤 섹스씬도 맘편히 감상할 수 있는 장면이 없다. 물론 레즈비언 섹스씬은 다분히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그것을 말하기에 '남성의 시선'은 이 영화에서 너무도 집요하게 비틀어지고 절단되고 고문당한다. 만신창이가 된 시선으로 감상하는 레즈 섹스는 그저 춘화도 아닌, 달이 휘영청 뜬 동양화 한 점처럼 보일 뿐이다.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면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정확히는 자기가 원하던 바와 별무관한 어떤 세계에 도달하게 된달까. 가령 부르주아적 취미의 극단에 이르면 역설적으로 '돈'과 무관한 세상이 나온다. 그처럼 진심으로만 조질 수 있는 연애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깃드는 것이 스킬이고 밀당이며 위악이고, 하다보면 그렇게 중간에서 눙싯거리는 것 또한 하나의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연애와 사랑이라는 게 그러하다. 

나는 지금 애인을 집에 두고, 누군가가 접근해도 별달리 끌릴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바에서 이 영화평을 쓴다. 온갖 유혹들을 추체험하며 그것들 사이를 마치 아는 듯이 지나쳐오는 연애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관습, 그것을 통과하여 애써 도달한 안개 같은 진심,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면 주제겠다. 그러니까 그것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참혹한 풍경을 지나쳤는지 곰곰히 곱씹게 된달까.

하정우가 이 영화를 선뜻 하겠다고 했다니 그는 역시 대배우다. 조진웅도 역시. 김태리는 스크린에서 정말 곱게 나오고, 김민희는 그보다 더 예쁘게 그려진다. <박쥐>의 김옥빈보다 한 수 위일 지경. 의외의 연기파 여배우도 한 분 나와서 임팩트 있는 걸 던져주신다. 

끝으로 요새 여혐이 주요 이슈인데, '김민희와 김태리가 섹스한대 하앍하앍' 이러는 한남충들이 이 영화를 두루 보고 내상을 좀 입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어차피 관객은 많이 안들 것이다. 근데 또 <곡성> 그 미친 영화가 500만을 넘은 걸 보면... 아 근데 <곡성>보다 쎄다니까? 

PS) 다시 곱씹어보니 전체적으로 에로게 '카와라자키가의 일족'에 대한 패러디 같기도.
PS2) 레즈비언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넘나 궁금하다.


덧글

  • 버디 2016/06/12 22:18 # 답글

    박찬욱의 변태끼가 제대로, 그런데 혐오스럽게 나오지 않은 간만에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곡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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