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 by cryingkid

역사학을 전공하다보니, 거기에 맞게 사람이 조형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가령 문사철을 놓고 봤을 때, 사학도는 국문학도의 문학작품 분석을 보고, 거기에 담지된 인간의 상상력의 가능성보다는 그 작품과 작가 스스로 세상에 긴박된 인간 존재의 제약 조건에 더 관심이 생긴다. 물론 그런 제약 자체가 시공간 안에서 정묘하게 가다듬어진 인간의 '가능성'인 거고, 사학도는 그런 식으로 인간의 무한을 사고한다. 또 철학도의 논리적 인과관계 분석을 보고, 사학도는 그 인과의 과정·결과가 특정 시공간의 어떤 조건 속에서 꽃피고, 또 어떤 조건에서 발현되지 않는지에 대한 기전을 더 궁금해한다. 그런 기전의 다발이 사실상 실제로 작동하는, 현실과 재현 양자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인과의 실재에 가깝고, 사학도는 그런 식으로 논리를 사고한다.

사회과학으로 넘어가면, 각 사회과학 분과 고유의 방법론과 이론 작업은, 현재의 역동적인 관심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실체에 보다 간명히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형되고 축적된 방법론과 이론들 자체가 과거와 현재와 연구자 모두에 대한 메타적 설명력을 가지고, 그로부터 견인되는 학적 권위를 지닌다. 인문학은, 특히 역사학은 그런 현재적 시선의 경로보다는 거기에 있었던 사회적 실체, 그 자체의 물성에 더 천착하고, 그렇게 어렵사리 재현된 바들을 통해 비춰지는 현재의 국면, 자신의 반영을 살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깃들게 되는 '현재적 시선'의 지분이 있는데, 역사학은 이 문제를 사학사나 연구사 정리를 통해 우회적으로 돌파하고, 이 과정을 통해 연구자는 스스로 역사와 시간의 일부로 스며들기를 자처한다. 따라서 역사학 스스로의 이론과 프레임은 사회과학의 그것처럼 직선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지만, 보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이다.

역사학은 인간을 옥죄고 있는 존재조건을 서술하기에 적합한 학문이다. 거기서의 인간은 당연히 근대적 주체 따위로 설명되기 힘들고, 설령 그와 유사한 역사상이 잠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쉽게 시공간적 맥락에 의해 제약된다는 걸 확인하고, 또 경험한다. 그런 현상들을 유한한 인간의 몸으로 서술하고 읽으며 음미한다는 것이 가지는 더없는 인문적 효과가 있고, 거기에 역사학도들은 종종 매료되며, 딴은 거기에 인생 전부를 바치기도 한다. 이 간단치 않은 인간 존재의 면면과, 이 간단치 않은 세상의 외상적 실재들을 세세히 직면할 때 비로소 환기되는 무엇이 있고, 그리고 그것들 사이를 곡예처럼 잇는 분석의 끈을 스스로 동여맬 때,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의 매듭이 비로소 해소되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 느낌, 그렇게 옥죈 과정 속 해소의 '틈' 안에서 역사학도는 일종의 범신적 신성을 경험한다.

그토록 역사학에서 도망가고 싶었는데, 두리두리 긴 길을 돌아들고 나니 저런 역사학도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새삼 내게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란 걸 길게 체감한다. 남들이, 또 내가 나에게 뭐라 하든, 그리고 그에 대한 내 의지가 어떻든, 나는 '결과적으로' 역사학도다. 그것은 내가 마음먹거나 명명한 것이라기보다, 나와 내 주위와 내 역사가 그렇게 구성한 것이다. - 2016.3.4. cryingkid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과 내 정체성을 정의하는 집단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타자를 위해서도 효과적인 행동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나의 첫 번째 원칙으로 삼는다."

- 해리 브로드, 「남성이 되느냐 마느냐, 이것이 여성주의의 문제로다」, 톰 디그비 편, 김고연주·이자원 역, 『남성 페미니스트』, 또하나의문화, 2004, 272쪽.

덧글

  • 쨔잔 2017/07/13 22:05 # 삭제 답글


    http://cafe.naver.com/hillsra

    안녕하십니까^^
    네이버 역사 카페 " 역사를 지키는 학생들"입니다!

    비전과 능력을 갖춘 카페!
    미래와 앞날이 밝은 카페!
    역사의 대중화를 선도할 카페!


    "역사를 지키는 학생들"에 가입하셔서 역사 이야기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