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란 원래가 앙상한 것이다 : [옥자](2017) by cryingkid



(스포일러 많음)

이 영화의 꽤 많은 것들이 무성의한데, 그 중에 그래도 제일 공들인 것은 감독의 공언대로 옥자와 미자의 사랑이다. 과연 그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지는데, 동시에 그 사랑이 얼마나 많은 외부의 세계를 삭제함으로써 가능해지는지를 영화는 함께 다룬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랑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독은 이 로맨스에 대한 냉소를 전력을 다해 전달한다.

가령, 후반부의 도축장 장면에서 정작 잔인한 것은 살덩이가 썰리고 포장되는 순간이 아니다. 거기에 있는 수많은 슈퍼돼지들 중에 살아남을 이유가 있는 것은, 오직 옥자 뿐이다. 왜냐하면 옥자는 미자가 사랑하는 돼지이기 때문이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랑의 외연이란 딱 거기까지다. 한 커플의 극적인 사랑 밖에는, 저렇게 한 인간과 친교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참히 썰려나가는 존재가 있고, 그걸 목도하는 일은 도축 공정의 핏물보다 한층 더 잔인하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휴머니티의 중요한 실체 중 하나다.

영화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인간적이고자 애쓰는 기업가가 그려진다.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애처롭고 추하며 "싸이코패틱"하다. 그와 더불어 영화는, 그렇게 인간적이고자 애쓰지조차 않는 기업가를 동시에 그린다. 그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비교적 친숙하고, 되레 잘 사회화된 사람처럼 보인다. 여기서 감독의 두번째 노림수가 보이는데, 다름아닌 이 시대의 '동물 애호'가 자리하고 있는 희한한 형태의 휴머니즘을 저격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이 휴머니즘의 좁다란 기저와 자의성에 대한 폭로다.

이 영화는 절대로, 절대로 에코페미니즘이나 기타 동물 애호 사조에 찬동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뒤집어 까는 시퀀스가 숱하게 묻어있다. 인간 중에 동물의 한 종을 통째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내가 정붙이고 이름붙인 특정한 동물의 개체를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휴머니즘은 자기가 정붙일 수 있는 것과 없는 대상을 순식간에 구분한다. 물론 그것은 대단히 비인간적이지만, 또 그것이야말로 도저한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내지는 그 점이 곧 인간과 동물이 별반 다르지 않은 부분일 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의 역대 작품 중에 가장 냉소적인 영화다. 그걸 가리기 위해 온갖 활극과 추격씬과 로맨스와 몰랑몰랑한 돼지의 CG와 혁명의 낭만과 넷플릭스의 자본이 동원되고, 때문에 관객은 그 냉소의 중핵을 이따금씩 잊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이야기의 핵심을 까먹게 될 때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어찌보면 그런 "신경흩음"의 행복이야말로, 인간과 로맨스가 관계맺는 방식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 속으로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우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신경쓰기 싫어요. 나는 그냥 내 편 들어줄 사람이(돼지가) 필요해요."

PS) 옥자가 로맨스영화라는 말은, 곡성이 가족영화라는 말과 거의 1:1 대칭된다. 둘다 영화의 핵심을 꽤 예리하게 짚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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