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09일
전인권, [박정희 평전]
진중권의 비호감 이빨에 새삼 경악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전엔 더했다. 97년 박정희 워너비 바람이 불 때 진중권은 그 비호감 이빨로 조갑제, 이인화 등을 물어뜯어, 어떤 학자에겐 너네 전공이나 잘하지 딴 전공 함부로 건들지 마라 뺀찌먹고, 어떤 학자에겐 경박하나마 파시즘에 대해 잘 까발려논 책이라 칭찬도 듣고 그랬다. 어찌됐든 진중권은 이 책으로 내 마음 속 후미진 무언가를 꺼내어 아 요로코롬 숨겨진 이 마음을 당신께서 불러주셨군뇽 - 라고 사람들이 우익에 감동먹으려는 찰나, 그 뒤통수를 후려치고 그 자리에 “파시즘”이란 주홍글씨을 떡하니 붙여준 사람이다. 내가 진중권을 이뻐하는 것도 그 비호감 이빨이 처음으로 어딜 물어뜯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이 책에서 진중권이 이인화 조갑제는 확실히 물어뜯었어도 박정희를 제대로 물어뜯었단 생각은 잘 안든다. 진중권이 방장하게도 “박정희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이미 검토가 끝난 부분”이라 질렀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이 양반이 물어뜯는 방식은 문제를 마무리짓기보다 멀쩡하게 또라이피는 애들 거꾸로 매달아 놀리는 ‘폭로’에 가깝기 때문에 시원한 만큼 한계도 뚜렷하다. 이 책으로 진중권은 2000년 ‘우리 안의 파시즘’ 논쟁을 예견했지만 2005년 ‘대중독재론’을 막아내진 못했다.
아무튼 진중권 덕에 우익 파시스트들의 말빨에 홀리는 건 면해봤다면, 그 다음으로 조갑제와 진중권이 보지 못한 ‘박정희’를 더듬어내는 것이 좀 필요하겠다. 왜? 나도 박정희 좋아했으니까. 좋아하다 대학와서 존나 싫어하게 됐으니까. 그리고 그 좋고 싫은 사이에 뭔가 나와 밀접한, 그러나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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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책에서 묘사하는 박정희의 면모가 나와, 혹은 내 주위 사람과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다음을 보자.
1. 가족같은 분위기
박정희는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적 윤리와 덕성의 문제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사상은 일견 화목한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목가적인 성격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교적인 위계질서에 근거한 계몽적 지도를 전제로 하고 있다. [...] 이에 대한 반대자는 덕성과 윤리가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할 가능성을 갖는다. - 263쪽
비유란 게 참 무섭다. 흔히들 큰 이야기를 자기 주위의 작은 이야기로 빗대 말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상관이 그런다. 아버지처럼 편하게 지내. 그럼 신참은 팍팍한 일터에서 아버지를 얻은 듯한 목가적 포근함을 느낀다. 하지만 포인트는 그 이면에 있다. 신참은 포근함을 얻은 대신 상관을 업무 외적으로 아버지처럼 받들어 모실 의무가 부여되며 그에 어긋날 시 졸지에 ‘천륜’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아버지같은 포근함은 벼룩시장 티켓다방의 ‘단란한 분위기’, 혹은 빚으로 떼이는 직업여성의 화려한 옷만큼이나 음흉한 것이다. 이처럼 천진한 관계는 그것을 뒤집을 때 인간만도 못한 취급을 받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물론 이는 최악의 경우다. 그렇게 아버지 아들 호부호형하면서 아래위로 끈적하게 지내면 얼마나 흐뭇할 것인가. 모진 세상에 그리 낭만적인 관계가 하나쯤은 있어줌직도 하잖은가. 숨통이 틘 듯 얼굴색이 핀다. 원초적 안정감이 밀려온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한마디.
“낭만적 태도는 언제나 동기의 순수함이란 형태를 취하며, 이를 근거로 정치적 무죄를 주장한다.” - 123쪽
이런 식의 낭만은 세사에 눈돌릴 여의치 않은 창구라는 점에서 측은하고, 그렇기에 세상과 성채를 쌓고 그 속에 머문단 점에서 위험하며, 그 속에 머물다가 그 낭만 속에서만 통할 논리를 세상에도 들이대게 된다는 점에서 경계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위계를 낭만으로 감싸안는 것, 나도 참 자주했던 짓이다. 어느 후배를 동생처럼 대하는 것으로 그와의 관계를 보다 깊이 고려하게 되는 것이 ‘낭만’의 영역이라면, 어느 후배를 동생처럼 대하는 것으로 그도 나를 전인적인 인생선배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건 ‘위계’의 영역이다. 앞은 뒤를 ‘잔정’이란 말로 은폐한다. 그 잔정의 낭만이 깨졌을 때 나는 대개 무력했다.
고립된 낭만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심수봉과 낭만을 즐긴 박정희도 그랬단다.
“그는 한 개인 개인을 따뜻하게 대할 줄은 알았지만, 그것은 상관과 부하로 맺어진 두 사람의 윤리적 관계를 전제로 한 따뜻함이지 근대적 개인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따뜻함은 아니었다.” - 262쪽
2. 박정희식 일처리
"내가 해온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야당은 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나는 진정 오늘까지 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 지지나 격려도 받아보지 못한 채, 오로지 극한적 반대 속에서 막중한 국정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하여, 나는 야당으로부터 매국노라는 욕을 들었으며 월남에 국군을 파병한다고 하여, ‘젊은이의 피를 판다’고 그들은 악담을 하였으며, 없는 나라에서 남의 돈이라도 빌려와서 경제 건설을 서둘러보겠다는 나의 노력에 대하여 그들은 ”차관망국“이라고 비난하였으며, 향토예비군을 창설한다고 하여, 그들은 ”정치적 이용을 꾀한다“고 모함, 반대하여온 것 등등 대소사를 막론하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비방, 중상, 모략, 악담 등을 퍼부어 결사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때 야당의 반대에 못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였더라면, 과연 오늘 대한민국이 설 땅은 어디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야당은 유세에서 나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 야당은 또 언필칭 나를 독재자라고 비방합니다.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 탄 듯“ 소신없는 일만 해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독재자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 소신껏 굽히지 않고 일해온 나의 태도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나를 아무리 독재자라고 비난하든, 나는 이 소신과 태도를 고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박정희, [(3선개헌을 앞둔)국민투표 실시에 즈음한 특별 담화문] 1969.10.10.
박정희의 이 눈물겨운 연설은 장기집권하지 말란 ‘반대’를 현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반대’로 물타기하고 있다는 점(239쪽)에서 더욱 ‘눈물겹’지만, 나는 좀 다른 곳에 주목하고 싶다. 왜 몹쓸 야당은 그렇게 모든일에 사사건건 반대만 해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해 박정희가 야당의 반대를 부를 수밖에 없도록 일처리를 해놔서 그렇다. 그는 민주적 토론의 여지를 일처리 과정에 끼워넣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국회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처리를 해온 셈이다. 일의 프레임을 처음부터 그렇게 짜놓은 것이다. 당연히 ‘무의미’한 국회에서 외칠 건 ‘반대’밖에 없다. 논의의 상대를 무시하는 초안일 경우, 그 상대도 반대편을 원천적으로 부정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요는 이미 처음부터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여당은 혼자 일하는 곳, 야당은 반대하는 곳, 국회는 맨날 싸우는 곳.
“박정희는 토론을 통해 문제를 타협하고 해결하지 못했다. 대신, 지시하고 그 지시가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그것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곤 했다. 그리하여 그의 측근이나 당내의 잠재적 경쟁자들은 박정희에게 토론을 제안할 만한 통로를 잃고 있었다. 따라서 얼마간 반발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박정희는 ‘자 해볼테면 해보아라!’라는 식으로 쟁점을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했다.” - 234쪽
저자는 박정희를 가리켜 非민주주의자가 아니라 無민주주의자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뭔지 알고 그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아예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박정희가 그의 인생사를 통틀어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구사범, 왜정 때 교사, 만주군... 그는 다만 자기 인생에서 스스로 배운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다. 이게 왠지 남말 같지 않다.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었을까. 왕 대신 대통령 뽑는, 뭔가 좋을 것 같은, 잘살게 해주는 것 같은, 그런 흐릿한 그림 외에, 책으로 배우는 흐릿한 상 외에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하면 고작 생각나는 것은 요식으로 치러진 학급회의의 기억, 아직도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겉치레’가 아닐까, 고작 다 되어가는 일에 반대의사가 ‘있다’는 걸 굳이 확인하려는 식의.
나는 사실 아직도 ‘토론’을 일의 과정에 할애하는 데 익숙치 않다.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맨날 일을 떠안거나, 혹은 떠안는데 길들거나, 혹은 떠안은 일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투여하거나 그랬다. 처음부터 그건 ‘내’ 일이었고 남들은 애초에 ‘일하지도 않으면서 말만 많은’ 역할이었다. 박정희도 그랬을 것이다. 저 가공할 물타기도 제 딴엔 남몰래 쌓인 억울함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일의 전유. 애초에 자기만 일할 수 있게 해두고, 남들은 ‘말’밖에 못하게 해두고, 나는 처음부터 주인공, 너는 처음부터 악역, 생각해보면 내 일처리는 죄다 그랬다. 그런 방식은 옆의 사람을 구조적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내가 박정희에게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3. 과거를 묻지 마세요
과거로의 단절적 망각, 청산적 단절 : 교사 → 군인 → 남로당원 → 또 군인 → 쿠데타 → 유신.
"그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미래라는 악마와 계약을 맺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 63쪽
남한 현대사 속 인물의 사상을 연구할 때 애로점은, 인생을 통틀어 일관된 논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박정희도 그랬다. 그는 민족주의자면서 친일파였고, 역사를 파괴하면서 자기 정통성을 역사에서 찾았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보 때문에 혹자는 처음부터 그를 ‘덜된’ 인간으로 놓고, 원래 ‘나쁜’ 놈이라 몰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파편화된 행동방식은 그에게만 드러나는 것일까. 많은 한국인들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행동원리를 자신의 행동체계 안에 수없이 많이 공존”해두면서 유사시마다 그에 맞는 인격 모듈을 하나씩 빼쓰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런 패턴 하에 과거의 역사는 상황에 따른 유연성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한다. 박정희가 역사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는가는 그의 한일협정 추진으로 알 수 있다. 그는 그의 남로당 전력이 거추장스럽듯, 국가의 과거사가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바로 북한이 종종 놀려먹는 ‘기회주의의 역사’다. 뭐 북한은 원칙 밀고 나가다 저꼴 났으니 그나마 다행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거는 잊어보겠단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럴 땐 더 강력한 것이 필요하다. 과거를 잊을 만큼 강력한 임팩트가.
“나의 꿈과 희망은 나의 지위가 ‘해가 갈수록 변화함에 따라’ 더욱 거대하고 위대하게 커갔다.” - 81쪽
“그는 허무의 극치일 수 있는 ‘찰나’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 ‘찰나’는 그 순간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극단적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 357쪽
사실은 나도 과거사 정리가 잘 안된다. 과거를 보면 잊고 싶은 것 투성이다. 과거에 별 신념을 안둔 만큼, 어질러진 방처럼 널브러진 과거들은 꼭 누가 오다 걸려 넘어질 것 같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지난 농사때 덮은 비니루 위에 다시 흙 씌우고 퇴비 붓는 느낌이다. 내가 사학을 하는 것도 결국은 정작 내 마당의 비니루를 제대로 못 파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다 묻고 살면 살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과거사 진상위는 우리 각자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뭐 무작정 전진!하면 안살아지는 건 아닌데, 그걸 굳이 꺼내고 더듬어서 곱씹고 싶은 변태적인 욕망이 굳이 드는 것은, 적어도 박정희처럼은 살기 싫은 때문이지 않을까. 뒤돌아볼 줄 모르고 산으로 들로 벼랑까지 뛰어간 인간, 내 아버지와 나를 쏙 뺴닮았던 인간.
“그는 단지 살아남는 데 만족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어야 했던 상황이 모순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했던 투쟁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처럼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 358쪽
“그가 사망한 후 한동안 ‘버림받은 독재자’였다가 이제 ‘박제된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 상황은, 서로 대립적인 행동방식을 절충시켜야만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박정희가 상정했던 약육강식의 현실세계의 반영이란 점에서 흥미로운 역사의 반복을 보여준다.” - 363쪽 - 20070917, cryingkid
# by | 2007/10/09 22:02 |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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