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by cryingkid


















- 序

한길에 버려진 신발도 어딘가는 제 짝이 있고 귀퉁이에 버려진 마음도 어딘가엔 제 갈 곳이 있지
하늘 높이 버려진 쓰레기들 모두 어딘가엔 제 주인이 있었을 터, 마음 속으로 자꾸자꾸 접어야 했던 무엇들 모두 어딘가엔…
그 짝과 짝 사이엔 희끄무레한 실이 있는 것 아닐까 다만 드러내보이지 않을 뿐 그것들 모두 실낱같이 이어져 있는 건 아닐까
그 실이 너무 많아 목을 옥죄어 대개는 그것들 벗어던지고 살고파 하지만
어느날 그대 한길에 쓰러질 때 땅바닥에 몸 다치지 않고 허공에 비스듬히 뉘어줄 수 있는 건
그 실들이 있어서는 아닐까 제자리를 알아주는 물건들이 내 몸을 있는 힘껏
떠받들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 한 꺼풀 아래 있는 포근한 탄력이 거기 그렇게 있는 건 아닐까
- [실] 全文


작년 가을에 쓴 글이다. 이처럼 작년엔, 사람들에게 실은 우리가 이어져 있는 거란 말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헌데 올해는, 사람들이 그렇게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는 게 되레 그들 스스로가 이어져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모르고 싶고, 피하고 싶은 그런.



1.

>우리는 완고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서로 통한다

[....]
너와 단절되고 싶어
네가 그리워

텃새 한 마리가 전선 위에 앉아
무언가 결정적으로 제 몸의 내부를 통과할 때까지
관망하고 있다 - p9, [전선들] 中 (시집의 첫 시)



살아보니까, 타인이랑 내가 어떻게 닿아있다는 생각을 살면서 계속 유지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알겠다.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건 담배처럼 달콤하다. 이따금 발작처럼 굳는 뇌세포들, 평생 몇 프로도 못쓴다는 뇌 몇 푼 굳힌들 무슨 허물이 되랴. 세상의 일 또한 그럴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연스레 단절에 매달린다. 너와 내가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무관하고 싶다는 욕구.


우리는 마침내 서로 다른 황혼이 되어
서로 다른 계절에 돌아왔다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면 물이 돼버려
그는 零下의 자세로 정지하고 - p10



생각은 담배를 요구한다. 담배 끊는 스트레스로 더 자꾸 피워대는 애연가처럼, 생각의 결과는 연결이 아니라 단절이다. 겨우 짜낸 결과가, 단절이다. 공부 끝에 오는 깨달음은, ‘세상과 내가 이어져 있다’는 인식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더 멀리 도망가야 겠다’는 의사이다. 그 ‘의사’는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다.

모든 것이 확고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처세는 나 또한 세상을 확고하게 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처세는 나 또한 세상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와 이 조직은 전적으로 무관하므로, 나는 단호하고도 유려한 자세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올 수 있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랴. “나의 완성을 모두가 용서”(p34)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주기적으로 교체”(p51)된다. “올해도 우리의 인생은 / 전문가들이 이끌어”(p84)"줄 것이다. “3년 후에는 조금씩 무능력해져서 행복하고 / 5년 후에는 아주 오랜만에 반성을”(p84) 할 것이다. 이렇게 “정기적으로”(p26), “순조롭게”(p27), “모든 것이 확정”(p30)된 채로 인생은 “흔쾌히 흘러간다”(p51). 끊임없이 반복되는 명료한 형용사들, 명료하고 기하학적인 인생들. “정직한 날씨”(p45)속에서 그것은 “가장 필연적인 종말”(p59)을 향해 나아가고, 그 속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개인적인 관계들을 생각”(p42)한다. 나의 고통은 지구상에서 한번쯤은 씌어졌을 법한 기성의 고통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단호”히 “경건”하고 “불순한 상상을 하지 않”으며 “완벽하게 나를 조절”(p68)할 것이기에.

사람 사이는 다양성의 은총으로 철갑같이 강고하다. 다양하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너를 이해하겠단 소리가 아니라 ‘다양성’이란 이름아래 너를 합법적으로 신경쓰지 않겠단 소리다. 너를 향한 “나의 시선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p68).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너무 많은 것을 반성해서는 안된다”(p61). 나는 “남의 사생활을 금방 잊을 수 있”(p34)으며 “나는 어떤 편향도 없”(p34)다.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p12), 그렇게 모두들 ‘완성’된 채로 거리를 거니는 광경은, 자못 장엄하다.


대형 통유리 너머로
사생활의 역사가 흘러간다
장엄하다
어떤 사생활이든 활보가 가능한 거리인 것이다
비둘기는 장엄한 자세로
지금 막 생애 최고의 활강을 마치고 안착한다
이 도시에서 지금 그것을 목격한 자는 나뿐
나는 그 활강의 자세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고요한 비둘기를 향해 아이는
아주 사적인 돌을 던지고
비둘기의 사생활은 가볍게 무너지고
나는 드디어 너를 바라본다
너와 나는 동지다 - p92, [사생활] 中






2.


도대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도 할 수가 없었다.
대공황의 시절이 오더라도
낙관적인 꿈과 함께 살아가야지
손가락과 손가락이
하늘에서 우연히 접촉하였다.
그러자 사랑스럽게 또 눈은 내리고
허공에서 스르르
사라졌다 - p36, [눈내리는 마을] 中



이 시집엔 유독 원나잇을 암시하는 구절이 많다. 확실히 원나잇은 오늘의 시대정신이다. 한 사람에게서 긁어낼 수 있는 내밀한 부분을 두 시간만에 겉핥는 검색정신. 가령 우리 사이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눈물 흘릴 구석이 많다, 그래서 나는 성급히 입맞추고 너의 샅을 더듬는다. 가볍고 얕아지고 싶다 - 아랫도리의 묵직함을 가장 무거운 실존의 고민 쯤으로 느끼고 싶다 억지로라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들이 곁에 있으면 / 먼산만 바라보게 되지 / 언제나 미봉책만이 가능하니까”(p110).

하여, 인생의 허무에 관한 노래를 듣다가 만난 지 두 번 된 사람과 사랑을 속삭인다. 누가 뭐래도 두 쪽 모두 나는 진심이다. 몸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는 손자욱이 나를 더듬거리듯, 너와 나는 무작위적이다. 무작위적이지 않은 것들 - 이를테면 역사 같은 것들에 대해 나는 아무 잃을 것 없고 책임질 것도 없다. “오늘 아침의 세계는 역사와 무관하고 / 어젯밤의 세계는 다만 어젯밤의 세계, / 우리는 어지럽고 아름답다 / 먼지처럼 / 음악처럼”(p71). 우리는 음표 사이의 거리처럼, “빗줄기와 빗줄기 사이의 / 수학적인 간격”(p57)처럼 치밀하고 완곡하다. 물론 가끔은 비참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은 건전한 일상 속으로 사라져요. / 어째서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거지? / 하지만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요.”(p114) 오늘은 안전하다. 왜냐하면 오늘 저녁에 나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들은 “최선을 다해 / 즉흥적이다”(p30).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서로의 앞에 놓인 명료한 단절을 즐긴다. “모든 게 예상대로”(p63)인 그것에 다시 몸을 던지는 느낌, 우리는 교묘히 마음편한 것들만 ‘예상’하고, 예상된 모든 건 “무책임”(p62)하기에,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다"(p61).


누구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음악이 부족하지 않았다.
어떤 사소한 운명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라도 할 듯
몰두하였다.

저는 이제 밤 자체인 듯 캄캄해지고
당신은 참으로 정직해집니다.
그것이 우리의 오랜 불운이겠지만.

생각이 많아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결국 도로 위의 고양이처럼 낡고 현명해.
네게는 번식의 욕망이 없고
내게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 p105, [오늘도 밤] 中





3.

사람 사이가 이어져 있다는 환상은 얼마나 비웃기 쉬운 것인가. 혹은 얼마나 건사하기 어려운 것인가. 사람 사이의 경계가 뚜렷해지는 순간 안정이 찾아오고, 단절이 있지 않으면 사람은 견뎌내지 못한다. 사람 사이의 이어짐은 그 단절이 허락한 특수한 경우에만 빛난다. 고로 이어짐보단 단절이 먼저다. 더 가까워진다는 것은 더 용의주도하고 세밀하게 단절한다는 것, 그에 들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데에 다름 아니다. 즉, 이미 모든 것들이 명료해진 속에서 그리움을 실현하는 방식이란 역설적으로 ‘단절’을 꿈꾸는 것이다. 그 그리움이 새나가지 않기 위한, 무수한 땜자국 같은.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p12),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p13), 감정의 샐틈을 철저히 막은 두 사람이 예정된 곳으로 입맞추고 있다. 세상과 통해있음을 외면키 위한 위악적 단절. 내가, 너와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몰라서 널 사랑했는줄 아니.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 편들어줄 수 있는, 내가 편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핵탄두미사일의 궤도처럼, 고샅께 핀 민들레 줄기의 곡률처럼, 가치중립적인 곡선이 그들 사이에 그려진다. “세계는 무한한 골목들로 이루어져 있고”(p75), 이로써 나는 나의 빈틈 속에 완벽하다.

“주체란 실체 내부의 자기 부적합성, 실체 내부에 그어져 지워지지 않는 빗금에 다름 아니다. 아아, 지겨워. / 아님 말고 : ”(自書). 지젝이 그랬던가, 주체는 균열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존재가 침범되지 않는 사랑은 없다고, 침범당하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그들의 유려한 곡선이 한껏 이지러지고, 나는 너를 필연적으로 사랑‘하기로 한’다. 피어리처럼 세상의 중심에 박는 말뚝, 내 결심은 완고하고, 흔들림이 없다.



너에게 나는 소문이다.
나는 사라지지 않지.
나는 종로 상공을 떠가는
비닐봉지처럼 유연해.
자동차들이 착지점을 통과한다.
나는 자꾸
뭄무게가 제로에 가까워져
밤새 고개를 들고 열심히
너를 떠올렸다.
속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가 있을 뿐.
나는 아무 때나 정지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복고적인 정신으로 충만하고 싶어.
가령 부르주아에 대한 고전적인 적의 같은 것.
나를 지배하는
기압골의 이동 경로, 혹은
저녁 여덟시 홈드라마의 웃음.
나는 명랑해질 것이다.
교보문고 상공에
순간 정지한 비닐봉지.
비닐의 몸을 통과하는 무한한 확률들.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 - [근하신년 - 코끼리군의 엽서] 全文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 - 20070324, cryingkid

: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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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5 부분 개고.

덧글

  • 2012/02/19 23:5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ryingkid 2012/02/22 13:35 #

    추천하신 시인의 시집도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저도 시집을 들춰보게 되겠군요. 저도 ANGE님이 궁금해집니다. :)
  • 2015/02/18 17:4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ryingkid 2015/04/08 12:28 #

    으어 이제 봤네 ㅋ 언제 한번 봐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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